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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0-24 20:32
   
“사랑의 물리학”에서 “희망버스는 정오에 떠나네”까지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346 [110]


 

“사랑의 물리학”에서 “희망버스는 정오에 떠나네”까지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문학세계사, 2017

 

몇 해 전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드라마에 감동적인 시가 여러 편 소개되면서 시 읽기 붐도 일었습니다. 그 중에 단연 으뜸은 도깨비(공유 분)가 지은탁(김고은 분)을 만나고 읊었던 “사랑의 물리학”이었습니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쿤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이 시는 김인육 시인의 시집 <사랑의 물리학>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현직 고등학교 교사였던 시인의 상황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많은 시들이 고등학교 생활이나 교과서에 나올 법한 문장과 소재로 쓰여있습니다.

 

또 한 가지,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교수가 벌였던 순수참여논쟁이 떠오릅니다. 이 논쟁은 이어령 교수가 1968년 2월 20일자 조선일보에 <오늘의 한국문화를 위협하는 것>이라 글을 기고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고문에서 이 교수는 ‘문학이 사회-정치 문제에 참여하는 것은 문화를 정치활동의 예속물로 만드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1주일 뒤 같은 지면에 김수영 시인이 반박문을 기고합니다. 그는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라는 기고문에서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라 반박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오늘날 이 논쟁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만큼 명확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문화에서 순수와 참여의 경계를 세우려는 시도가 가장 불온한 것입니다. 실제로 문학의 사회참여를 반대하고 순수문학을 주장했던 이 교수가 엄혹한 독재시절에 소위 꿀보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한 것을 보면 ‘그의 순수문학은 과연 순수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달달구리한 연시를 기대하고 <사랑의 물리학>을 펼치면 “빡!”하고 배신의 뒤통수가 날아옵니다. “사랑의 물리학”은 저 뒤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 시에 도달하려면 수많은 사회 참여적인 시를 읽어야 합니다.

 

인간과 세상 잡다한 것에 애정을 가진 지성이라면, 그 인간사와 세상사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정치에 침묵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도(無道)한 정치에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반지성(反知性)입니다.

 

“사랑의 물리학” 앞에는 “희망버스는 정오에 떠나네”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희망버스는 정오에 떠나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가네

장마에 불어터진 희망을 싣고

자본에 불어터진 절망을 싣고

떠나네

희망으로 가서 절망으로 만나네

만나서 절규하네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노동과 공복을

가족과 일상을

우리 슬퍼도 살아야 하네

우리 슬퍼도 살아야 하네

개발과 이윤을

권력과 자본을

끄떡끄떡 하늘로 들어 올렸다는 영도다리는

이제 움직이지 않네

하루에도 몇 번

바닷길 하늘로 열린다는 아름다운 전설은

붙박이처럼, 불구처럼, 딱딱하게 굳었네

부산 영도에서, 명동거리에서, 잿빛 작업복에서

희망이 해고되네

노동이 철거되네

달려가도 달려가도

열리지 않는 길

열리지 않는 하늘

아아

불구처럼 딱딱한 시월,

☓ 같은

 

순식간에, 거짓이 진실을 탄압하고, 노동자에게 노동할 자유만 허락하는 무도한 시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며, 억압당하는 이웃의 편에 서는 것이 가장 순수한 신앙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지성이 되살아나길 바래봅니다.

 

우동혁 목사(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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