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제우의 철학
<최제우의 철학>, 김용휘 지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2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은 <최제우의 생애와 철학>을 소개하고 있고, 뒷부분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실려 있다. 동경대전은 한문으로 되어 있고, 용담유사는 한글로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주로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금방 뜻을 헤아리기는 어려운데, 책에 해석을 함께 실어 놓아서 일반독자도 충분히 뜻을 새길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경전을 모두 모아 엮은 책’이란 뜻이며, 용담유사는 ‘용담의 수운 선생이 남긴 가사’라는 뜻으로 한글 가사체라는 문학적인 형식과 운율적인 음악 형식을 취한 경전이다. 수운 선생의 생애와 득도시의 상황, 하늘님과의 문답, 득도 후의 기쁨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에게 동학의 핵심 가르침을 전하는 한편 바른 마음으로 수도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는 심정도 잘 나타나 있다.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선생에 의한 동학 창도는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극심한 사회적 모순과 서세동점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조선 백성들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나온 치열한 고민과 구도의 결과물이었다. 이것은 수운 선생이 신분적 제약 속에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절감했으며, 10년간 계속된 떠돌이 생활을 통해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한 까닭이다. 선생의 구도 동기는 한마디로 輔國安民에 있었다. 선생은 첫 번째 신비한 체험인 ‘乙卯天書’사건을 계기로 공부 방법을 기존의 독서와 사색의 방법에서 하늘에 기도하는 종교적 수행으로 바꾸게 된다.
하늘님은 이 세상을 만들고 저 너머에 계신 초자연적 인격신으로만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당신의 몸 안에 모셔져 있는 靈이자 기운이며, 나아가 ‘마음’이라는 새로운 자각에 이르게 된다. 수운선생은 이 시대(19세기 중엽)를 ‘다시개벽’의 시대라고 부르짖은 바 있는데, 시천주와 더불어 ‘개벽’은 동학의 가장 핵심 사상 중 하나이다. 개벽사상은 시천주의 사회적 실천이다. 이 ‘侍天主’라는 개념이 정립됨으로써 비로소 동학은 이전의 전통 사상과 갈라지고, 또한 서학과도 차별성이 생기면서 동학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학은 본래 ‘동국의 學’, 즉 ‘조선의 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학은 서학에 대한 동학이 아니라, 유학과 서학을 포함한 모든 외래 학문에 대해 ‘우리 학문’을 의미한 것이었다. 우리 땅의 우리 백성들에게 맞는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했다는 의미이다. 또한 동학은 본래 하나의 종교적 교단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수운 선생의 인간 이해의 출발점은 ‘하늘님을 모신 존재’이다. 수운 선생이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은 일차적으로 시천주를 자각한 사람이다. 자기 안에서 하늘의 신성을 발견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낡은 자기로 있을 수 없다. 그동안 거짓 자아 속에 파묻혀 있던 마음의 깊은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초월적 차원을 열게 되는 동시에 다른 모든 존재 속에서도 하늘의 신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 개체로서 거룩하고 신령하면서도 전체와 기화 상통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소외를 극복하게 하고 생명의 근원적 중심에 동참하게 한다는 면이 우리가 다시 수운의 철학을 재사유 해야 하는 소이연이다.
동학은 근대 문명이 하늘로 대표되는 삶의 신비를 외면하면서 생긴 인간성 상실과 정신적 궁핍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의 재정립을 통해 보이지 않는 차원을 아우르면서 삶의 신비와 영성을 되살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동학은 오늘날처럼 삶의 신비가 가리워지고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고 서양의 근대 문명이 한계점에 부딪혔을 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철학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동학을 다시 지금의 ‘우리 철학’으로 되살려 깊이 읽어내야 할 이유이다.
동학이 꿈꾸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하늘님으로 존중받는 세상이다. 온통 구겨지고 찢겨지고 버려진 하늘님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동학이 꾸던 꿈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꾸었으면 좋겠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니까!
주은숙 전도사(새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