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2012.

언젠가 야당의 유력 정치인이 저소득, 저학력층에 보수 정당 지지자가 많다고 발언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물론 발언의 시의적절함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사실 이미 계급 세습을 상당 부분 완료한 우리 사회에서 저소득과 저학력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 저소득은 저학력에 대부분 기인하고, 저학력은 저소득의 불가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이 부자 감세나 친기업적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른바 이율배반 투표 혹은 계급배반 투표(Class Betrayal Voting) 현상은 팩트이자 불편한 진실이다. 왜 이런 일이 거듭 일어나는가? 

토마스 프랭크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품었던 모양이다. 그는 끈기 있게 보수주의자들의 행태를 분석하는 일련의 저작을 발표했는데, 국내에도 여러 권의 번역서가 나와 있다. 본서를 비롯하여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은 프랭크의 미국 보수주의 정치 분석 3부작이라 할 만하다. 특히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자신의 고향인 캔자스 주를 중심으로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계급배반 투표 현상을 밝혀나간 역작이다. 토마스 프랭크는 고향 사람들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풍경을 파헤친다. 그리고 민중의 착란 현상을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 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미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을 선동해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익만 주는 반란을 경험했다. 우리가 캔자스에서 본 것은 이런 수수께끼 같은 현상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142쪽)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미국에 보수 반동의 광풍이 몰아친 2000년 대선을 분석하면서, 어떻게 공화당의 부시가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당시 공화당의 주도 세력은 네오콘이라 불리는 극우 성향의 기독교 우파였다. 이들은 캔자스 민중의 불만과 우려를 기독교 근본주의와 절묘하게 결합시켜 공격의 화살이 자유주의 민주당과 지식인들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선조들이 이룩한 '거룩한 땅'을 북부의 양키들이 타락시켰다고 선동했다. 민중의 고단한 삶과 지역의 낙후가 경제 구조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숨긴 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문화 현상으로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켰다. 낙태와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가 핵심 가치로 등장해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경제계급적 이슈가 어느 순간 문화적 프레임으로 둔갑하면서 결과적으로 정치적 승리를 차지해 버리는 마법이 발휘되었다. 

“투표를 하는 순간 당신은 자유인에서 노예가 된다.” (298쪽) 

가난한 사람들의 계급배반 투표는 보수의 돈과 머리가 합작한 고도의 여론 조작술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자본과 종교와 언론에 의해 수행되며, 이미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캔자스 민중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까닭이 여기 있다. 우리는 흔히 보수를 머리도 없고, 생각도 없는 무리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난 세월의 교훈은 오히려 진보가 너무 나이브하다는 뼈아픈 각성이다. 지금이야말로 꼼꼼한 ‘진보 집권 플랜’이 절실한 때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리라.

진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