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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9-28 00:27
   
혐오로는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1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23 [107]


 

혐오로는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강동혁 역, 다산책방, 2020년

 

한국 교회가 무척 사랑했던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 어렸을 적, 귀에 못이 배기도록 예화에 등장하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링컨 예화가 환영받지 못합니다. 다들 식상한 이야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질리고 신물이 나더라도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흑인노예해방을 위해 전쟁도 불사했던 인물, 결국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 링컨입니다. 차별 철폐와 인권 신장을 위해 그보다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멋진 꿈을 꾸고, 뜨겁게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 걸까요. 언제부턴가 교회가 링컨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사회적 소명도 갈 길을 잃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워터 댄서>는 한국 교회가 그렇게 식상하게 여기는 미국 노예해방운동에 대한 소설입니다. 19세기 미국 남부 버지니아주와 북부 필라델피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노예 해방 운동의 다양한 측면을 재현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이람 워커는 백인 농장주 아버지와 흑은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입니다. 비상한 머리를 가진 하이람은 늘 백인 아버지를 동경하면서 언젠가 아버지께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개망나니인 백인 아들의 차지였습니다.

 

하이람은 백인 형을 모시고 귀가하던 중에 마차가 강에 추락하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잠재되어 있던 초능력이 발휘되면서 혼자 살아옵니다. ‘인도’라 불리는 신비한 능력을 자각한 하이람은 전처럼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 소피아와 도주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흑인 조력자에게 배신을 당해 노예 사냥꾼에게 잡히고, 노예상에게 팔려갑니다. 

 

새 주인에게 팔려간 하이람은 그들이 ‘언더그라운드’라는 노예해방조직에 소속한 백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들은 하이람의 ‘인도 능력’을 주목하고 그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주하다 잡혀 노예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되니 하이람을 구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이람은 자신을 구해준 백인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료를 밀고하는 흑인이 있는 것처럼, 백인들 중에는 노예해방운동을 한답시고 자기 의를 드러내는 데만 목적이 있는 인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흑인의 인권과 자유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노예를 학대하는 다른 백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예해방을 착한 주인이 되는 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흑인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데는 관심이 없고, 늘 시혜적인 태도였습니다. 흑인들 입장에서는 백인 주인 만큼이나 그 백인들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이람은 자기를 구해준 백인들도 그 백인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워터 댄스>는 지금까지 노예해방운동을 다룬 책들과 완전히 다룹니다. 노예해방운동을 억압과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주인공이 잠재된 초능력을 깨닫고 슈퍼 히어로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로 풀어갑니다. 게다가 흑인은 선 백인은 악, 흑인은 피해자 백인은 가해자라는 비현실적인 선악구도도 철회합니다. 흑인 내부에도 선과 악이 있었고, 백인들이라고 모두가 가해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노예해방운동을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자주 계급이나 직업, 학연이나 지연, 종교나 정당, 성별이나 성적 지향 같은 것을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으로 삼는 이들을 만납니다. 허상도 그런 허상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혐오로 선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 감리교 정치의 계절이 지나갑니다. 혐오와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우정이 우리의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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