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만큼만 살아가렴!
<개>, 김훈 저, 푸른숲, 2005년
사람들은 흔히, ‘개같다’는 말을 욕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책을 펼쳐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말을 쉽게하지 못할 것이다. 개의 생애가 참으로 기구하고 애처롭지만, 진실하고 뜨겁다. 개의 생애를 통해,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개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보리(개)의 1인칭 시점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 …… 그러니,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 그 고통과 슬픔을 모두 각오하고서, 나는 우선 개로 태어나는 일의 기쁨과 자랑을 말하려 한다. …… 사람들아, 구두 신고 두 발로 서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아 …… 개 짖는 소리를 들어라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컹, 컹컹컹 우우우우우 …….” (12쪽)
자, 이제 컹컹 울어대는 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보리의 엄마는 새끼 다섯마리를 한번에 낳았다. 맨 처음 엄마의 몸을 열고 세상에 나온 맏형은 앞다리가 부서져 있었다. 앞장서서 좁고 어두운 길을 열고 나오다 앞발이 삐인 것이다. 이후, 큰형은 엄마 젖꼭지를 차지하는 일에서 밀려났다. 보리의 엄마는 첫째가 기운을 차리게 하려고 다른 자식들이 빨고있는 젖을 털어댔지만, 철없는 동생들은 양보가 없었다. 엄마는 어느날, 그렇게 시름시름 앓던 첫째형을 삼켰다. 엄마는 주인 할머니한테 죽도록 매를 맞았다.
“앞다리가 부러진 채 태어난 맏형이 개의 한 세상을 온몸으로 비비면서 살아내야 한다는 일을 엄마는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엄마는 맏형을 다시 엄마의 따스하고 축축한 몸 속으로 돌려보내기로 작정했던 거야. 맏형은 엄마의 몸 속으로 다시 돌아갔고, 엄마의 입술에는 피가 묻어 있었어. 맏형은 그렇게 죽었어. 죽었다기보다는 제자리로 돌아간 거지. 엄마의 몸 속으로. 그 어둡고 포근한 곳으로.” (20쪽)
엄마는 자신이 잘못 낳은 자식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았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맏이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었다.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간 첫째는 영양분이 되고, 엄마의 젖이 되어 다시 생명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대노했고, “야이 똥개야!” “개만도 못한 똥개야!” 소리친다. 누가 개만도 못한 똥개일까? 그렇게 보리의 형제들은 돈만 생각하는 주인에 의해 여기저기로 팔려나갔다. 보리의 엄마도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사람들의 탕 한그릇으로 바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개들도 공부를 한다. 개는 사람과 다르게, 열 달 만에 어른이 되어 혼자 힘으로 세상과 부딪쳐야하기에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새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지.” (24쪽)
개의 공부에는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학습이 부족한 개는 그걸로 끝이다. 내달릴 때 감각이 틀어지는 순간 온몸은 부서져 나가고, 아무나 주는 잘못된 음식을 먹었다가는 한여름 보양식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러니 치열하게 공부한 개 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과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보리’의 관점을 통해 개들의 사랑, 개들의 결투, 개들의 우정과 신의가 재미있게 소개된다. 또, 개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똥을 먹는 개를 똥개’라 부른다. 그런데 보리는 말한다.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다. 개들은 때를 분별한다. 개들은 주인과 적을 구분한다. 개들은 싸울 때와 짖어서 쫓아버릴 때를 안다. 개는 자신이 죽어야할 때와 피할 때를 분별한다. 개들은 자신을 먹여살리는 주인을 위해 해야할 일을 안다. 온몸으로, 평생동안, 목숨걸고 이것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개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세상은, 오히려 더 리얼하게 인간의 모습을 꼬집는다. 그리고 개들의 이야기는 마침내,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묻게된다. 우리 삶은 개의 생애보다 나은가? 대답이 쉽지 않은건 왜일까? 인간의 삶도, 보리의 이야기처럼 아픔과 기쁨과 그리움과 환희가 뒤죽박죽 녹아져있다. 개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참되게 살아가고픈 열망이 생긴다. 개만도 못한 인생이 되지 않기를!
신동훈 목사 (마포 꿈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