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해, 엄마
<H 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정혜윤 역, 문학동네, 2022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라는 말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들은 적이 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부모에게 무수히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미국 위스콘신에서 두 살된 아들을 아내와 함께 키우면서 저 말이 더욱 와닿게 되었다. 요즘 아이의 말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어제는 토끼를 ‘깡총깡총’ (깡충깡충이 옳은 표현이지만, 내 아들은 그렇게 불렀다)이라고 불렀다면, 오늘은 ‘토끼’라고 정확히 발음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지만, 아이에게 언어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는 한국어 사용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우리의 말은 이해하지만, 미국인들의 말은 낯설어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여러 마음과 생각들이 올라온다.
책 <H 마트에서 울다>를 쓴 저자 미셸 자우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만 아픈 아내의 병수발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모르고 때때로 외도도 저지르는 마초스러운 미국인 아버지와 피부와 스타일 그리고 집안 청결에 집착하고 아이가 넘어져 다쳤을 때 걱정하기보다 야단부터 치고 보는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전업주부였기에 미셸은 많은 시간을 어머니와 보냈고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많은 부모와 자식들이 세대갈등을 겪듯 미셸은 세대적 차이를 비롯해 한국인 어머니의 삶의 방식과 자신이 자라고 있는 미국 문화의 차이로 인해 때로는 어머니의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고 상처로 다가오기도 한다.
“엄마는 내가 ‘마미맘(Mommy-Mom)’이라고 부르는, 내가 그토록 부러워한 친구들 대부분의 엄마와 달랐다. 마미맘은 제 아이가 하는 말이라면 아무리 쓸데없는 말이라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고, 아이가 아프다고 조금만 징징거려도 부리나케 들쳐 업고 병원에 데려가는 사람이다…(중략)… 하지만 엄마는 내가 다칠 때마다 소리부터 질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한테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외모에 집착이 심해서, 밤이고 낮이고 QVC 홈쇼핑 채널을 틀어놓고 클렌징 컨디셔너며 특수 치약이며 캐비아 오일 스크럽이며 모이스처라이저며 토너며 노화방지 크림 따위를 전화로 주문했다. 엄마는 음모론자만큼이나 광적으로 QVC 제품을 신봉했다…(중략)… 엄마는 그 안에 든 것들을 얼굴에 찍어 바르고 펴 바르고 문지르고 두드리면서 열 단계 피부 관리법을 거의 종교적으로 따랐다.”
“엄마의 완벽함은 짜증이 날 정도였고 그 빈틈없음은 내겐 완전히 수수께끼였다. 대체 어떻게 관리를 한 건지, 엄마의 10년 된 옷은 개시도 안 한 새 옷처럼 보였다. 코트와 스웨터에는 보풀 하나 없었고, 에나멜 구두에는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미셸은 2년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6주 동안 머물곤 하였다. 그녀가 살던 오리건 주 유진은 시골 지역이어서 차 없이 어딘가를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운전하기에 너무 어렸던 그녀에게 집 주변에 풀과 나무만 우거진 그녀의 시골집은 답답하고 따분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할머니 집이 있던 서울 강남은 유진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그녀는 대도시에서의 생활을 너무 좋아하였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외모에 집착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게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쌍커풀도 엄청나게 좋아해.”
“한국 여자들 중에 그걸 가지려고 수술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깨닫지 못했지만, 엄마가 알려준 그 이야기는 엄마가 왜 그렇게 외모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는지, 왜 그토록 브랜드를 애호하고 피부관리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는지 설명해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간의 행동이 엄마라는 사람의 얄팍한 불평과 변덕 탓이라기보다 엄연한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셸 어머니의 사랑의 언어는 음식이었다. 때론 딸과 다투더라도 한결같이 김치찌개와 같은 한국 음식들을 차려주곤 하였다. 집밥 외에도 짜장면, 탕수육, 특히 미국 사람들은 날생선을 먹지 않는데 전복, 가리비, 해삼, 방어, 문어, 킹크랩, 산낙지와 매운탕과 같이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의 세계로 딸을 초대하곤 하였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렇듯 미셸 또한 어머니의 마음을, 그 사랑을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때 어머니 나이 쉰여섯,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필라델피아의 엘킨스 파크라는 도시에 있는 H 마트(한인마트)에 갈 때면 그녀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슬픔에 울기도 한다.
“엄마가 죠리퐁 봉지에 든 작은 플라스틱 카드로 숟가락을 만들어 캐러멜 맛 뻥튀기 퍼먹는 법을 가르쳐주고, 나는 아니나 다를까 그걸 셔츠 위로 왜그르르 쏟아버려 자동차를 온통 엉망으로 만들었던 때를 떠올린다.”
“원반 모양의 그 앙증맞은 쌀과자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엄마가 내 곁에 있고, 방과 후에 둘이서 동글납작한 스티로폼처럼 생긴 과자를 한입 크기로 입에 넣고 아작아작 씹으면 그것이 혀 위에서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버리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미국의 큰 도시들에는 H 마트가 있다. 사실, H 마트가 집으로부터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다. H 마트에서는 고추장, 된장, 간장부터 김치, 갈비, 삼겹살, 그리고 빨간 마미손 고무장갑과 같이 한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구할 수 있다. H 마트에는 새우깡, 꿀꽈배기와 같은 한국과자를 구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한국 고구마, 감, 참외, 부추와 같은 한국 식재료를 구하러 한 사람들도 있고, 이미 조리된 육개장, 우거지 해장국, 오징어젓갈과 김밥과 각종 전들과 같이 이미 조리된 음식들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 그리고 마트 내에 있는 한식당 및 파리바게트와 같은 한국식 빵집을 이용하러 온 사람들도 있다. 각자 미국에 살게 된 배경은 달라도, 그들이 H 마트를 찾는 이유는 미셸이 말한 것처럼 “고향의 한 조각,”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그 곳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H 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엄마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의 어머니의 경우도 음식은 사랑의 표현 방식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평소에 유심히 지켜보시고선 내가 어떤 음식들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곤 하셨다. 많은 한국 가정집들이 그렇듯 갈비는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어서야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군복무 시절, 훈련 기간이 끝나고 첫 가족 면회 때, 그리고 휴가를 받아 집에 가게 될 때면 어머니는 전날 미리 재워둔 갈비로 나를 먹이곤 하셨다. 아들이 품으로 돌아온 날이 명절처럼 기쁜 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하지 않아도 정성껏 준비된 식탁 위의 맛 좋은 음식들이 사랑의 표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그립고, 부모님의 품이 그리울 때면 아내와 나는 부엌에서 엄마가 그 시절 만들었던 그 ‘맛’을 재현해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일지도.
민학기 (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