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저, 안인희 역, 바오출판사, 2009
2022년 8월 말 전 세계 인구는 79억7천만 명으로 80억 인구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구촌에 오늘날처럼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80억에 이르는 인구는 그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80억 개의 다른 생각을 가진 주체가 살아가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양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언제나 획일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습니다. 특히나 힘을 가진 이들은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가진 기준 만이 진리라는 주장으로 모든 인간의 생각을 획일화하려는 욕망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힘을 지닌 이들이 취하는 자세였습니다.
가톨릭의 타락을 비판하며 새로운 성서해석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말하는 기독교개혁세력 마저도 가톨릭처럼 아니 가톨릭보다 더한 획일적 사유체계를 강요하기 시작했음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개혁의 대표 주자가운데 한 사람인 칼뱅, 오늘날 전 세계 개신교회의 상당수와 한국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의 신학과 체계의 기초를 제공한 칼뱅이 자신의 굳어진 신관과 세계관 그리고 교회이해에 따라 신정국가를 건설하고자 어떤 획일주의를 어떻게 강요했는지 조명한 이 책을 통해 어제의 칼뱅이 아닌 오늘의 칼뱅이 되어가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누구에게도 세계관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지상의 어떤 권력도 인간의 양심을 결정할 권한을 가질 수 없다”고 외친 카스텔리오의 주장은 “어떠한 파당의 이름도 빌리지 않았고, 오직 인간성의 영원한 정신에서 이러한 신념을 밝혔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 말들은 어느 시대에나 타당하다” 인정한 수테판 츠바이크의 주장은 참으로 귀중합니다.
“하나의 교리가 국가기관과 그 억압수단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 그것은 무자비하게 테러를 자행한다. 자신의 전권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목에 있는 말을 짓누르고, 대게는 그의 목까지 아예 짓눌러 버린다.”는 저자의 주장은 오백년 전 그곳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백년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벌어진 신정국가 건설에 따른 인간 양심의 자유와 인문주의 파괴의 실상을 단순히 과거의 일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힘을 가지고자 하는 이들, 힘을 가진 이들에 의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개혁자들과 다른 의견을 가졌던 세르베투스를 칼뱅이 처형함으로써 이제 ‘교회(가톨릭)’를 넘어서려 했던 그들도 ‘교회’가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성서 해석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를 인정”하는 개신교 정신의 근간이 흔들렸다.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에 계신다면, 그분은 절대로 여러분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한두 가지 세부사항에서 틀렸다고, 혹은 잘못된 길을 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라며 “종교문제는 싸움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사랑으로, 외면적인 습관이 아니라 내면적인 마음으로 입증되기만을 바라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 폭력이 아닌 자유로운 영혼의 목소리로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삶에 대한, 그의 인문주의에 대한 그리고 양심의 자유에 대한 생각은 이 책의 말미에 적어놓은 다음의 글이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력자들이 자유정신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해도 암무 소용이 없다.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양심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 언제든 모든 칼뱅에 맞서 어떤 카스텔리오가 다시 나타나서 폭력의 모든 폭행에 맞서 사상의 독자성을 옹호하게 될 것이다.”
박정인 목사 (하늘씨앗교회 담임, 기독교기본소득포럼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