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순례 : 세계교회협의회의 역사와 주제
(도널드 노우드 지음, 한강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1)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가 2022년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라는 주제로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책은 1948년 창립총회부터 2013년 부산총회에 이르기까지 열 차례에 걸친 WCC 총회들을 분석하고 서술함으로써 변화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복음이 지시하는 교회의 정체성과 올바른 증언의 길을 찾기 위한 세계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노력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시대적 상황 안에서 세계교회협의회가 어떻게 시작되고 형성되었으며, 또 고뇌하며 발전해갔는지를 70년에 걸친 역사와 만나게 된다.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1948)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서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식하면서, 전쟁 전후에 나타난 “인간의 무질서”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섭리”를 성찰하며 증언하였다.
제2차 에번스턴 총회(1954)는 중국 공산화와 한국전쟁에 이르는 냉전 시대의 분열이라는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희망”으로 증언하였다.
제3차 뉴델리 총회(1961)는 반둥회의로 출발한 제3세계의 등장과 베를린장벽으로 야기한 동서냉전과 세속화의 길을 걷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으로 증언하였다.
제4차 웁살라 총회(1968)는 유럽의 학생운동 시대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가운데 인간화를 위한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세우기 위해 사회참여를 강조하면서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라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선언을 증언하였다.
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는 인종차별이 진행되고, 제3세계 안에 일어난 자유와 해방에 대한 요구에 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며 하나 되게 하신다”라고 증언하였다.
제6차 밴쿠버 총회(1983)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적 억압,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 인권유린, 핵 실험과 핵무기 개발 등 생명을 죽이고 손상하는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증언하였다.
제7차 캔버라 총회(1991)는 1980년대 말 냉전 이데올로기 해체기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고 환경파괴와 생물멸종, 자연재해, 원주민과 소수민족의 생존권 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증언하였다.
제8차 하라레 총회(1998)는 구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는 변화 속에서 경제세계화,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자원고갈로 인한 혼돈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와 소망 중에 기뻐하라”라는 새 비전을 증언하였다.
제9차 포르투 알레그레 총회(2006)는 9.11사태, 테러와의 전쟁, 종교분쟁, 생태계 파괴로 말미암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하나님, 당신의 은혜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라고 증언하였다.
제10차 부산 총회(2013)는 평화공존과 통일을 갈망하는 한반도의 민(民)과 동행할 것을 다짐하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정의와 평화를 위한 순례로 정의하고,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기도로 증언하였다.
옮긴이는, 지은이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한 에큐메니컬 운동을 진보주의나 자유주의 운동으로만 귀결 지으려는 시도에 대해서 조심스러움을 내비치며, 적어도 현재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이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와 복음 전파에 점진적인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경향을 무시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옮긴이는, 특히 부산 총회에서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컬 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의 갈등의 깊은 골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실타래처럼 얽힌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은이가 향후 에큐메니컬 행동의 한 원리로 지적한 “겸손”이라는 자세가 요청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겸손과 포용이 결핍된 상태로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자기 주장만을 고수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하면서, 양 진영 사이의 성찰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만나고 지속적으로 소통함으로써 한국교회 내면의 분열을 봉합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로 나아가려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많은 사람이 “정상”으로 간주하던 삶의 방식에 중대한 도전을 주었다. 동시에 전쟁은 많은 비참함과 고통과 죽음을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기후의 변화는 새로운 차원의 공포가 되었다.
이러한 때에 열리는 제11차 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으로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는 것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선언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이다. 교회와 전 세계의 모든 선한 세력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되고, 인류로서 진정한 일치를 누릴 수 있는 총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권종철목사/예수마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