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말렉의 비밀
임봉대 저(조명문화사, 2014)
아말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왔을 때 첫 번째로 부딪쳤던 이방 민족이다. 당시 광야의 도적떼였던 아말렉 족속은 피곤하고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였으며,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 이후 아말렉 족속은 사사 시대와 사울 시대에 산발적으로 등장하다가 다윗 시대에 거의 소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의 그림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 반유대주의의 상징이 되고 있어서 구약성경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민족 중 하나이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탁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 15:3)는 하나님의 명령은 인종학살(genocide)과 같은 느낌을 주어 불편하기까지 하다.
『아말렉의 비밀』은 성경에 등장하는 아말렉과 관련된 본문들을 역사비평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중동지역에서의 갈등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종학살에 대한 올바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아말렉은 본래 이스라엘과 친족 관계인 에서의 후손이다. 그럼에도 아말렉 사람은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은 아말렉 사람들과 대대로 싸우겠다고 하셨으며(출 17:8-16),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신 25:17-19).
사울이 왕국을 세운 후 사무엘을 통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아 오고 많은 재물들을 갖고 왔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은 사울을 책망하고 아각 왕을 직접 죽였다. 그런데 페르시아 시대에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인을 몰살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이를 간파한 모르드개가 에스더 왕비로 하여금 그의 흉계를 왕에게 고하도록 함으로써 유대인을 구출하였다.
하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이요, 모르드개는 사울왕이 속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모르드개는 그 옛날 자기 조상 사울 왕이 범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하만과 그의 자식들을 모조리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자는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자신들을 박해하거나 죽이려고 했던 적들을 지칭하는 상징으로 아말렉이라는 명칭을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주전 2세기경 유대인들을 극심하게 박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로마의 티토 장군, 중세 시대에 유대인을 박해한 기독교인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6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 1992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등이다.
1995년 11월 4일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중동 평화를 추구하였던 이스라엘의 이츠학 라빈 총리가 바일란 대학교의 법학도였던 이갈 아미르에 의해 암살을 당했다. 극우 유대주의자 청년인 아미르가 중동 평화를 위해 적대 세력과 화해를 시도하던 라빈 수상을 암살한 것은 그 옛날 사울 왕이 범했던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가 라빈 수상을 암살한 근거로 삼은 “적을 이롭게 한 자는 죽여도 좋다”는 유대 법에도 아말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베냐민 지파 출신의 청년 사울이 나무에 매달려 죽은 예수를 쫓는 기독교인을 악착같이 죽이고 박해하려고 했던 이유도 예수께서 아말렉처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울은 달라졌다. 원수같이 여기던 기독교를 굳건한 반석 위에 세우고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그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소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구약성경에서 아말렉이 저주를 받은 것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방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약한 자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약한 자의 편에 서시는 분이지 강자의 이데올로기를 편드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특정 민족을 증오하거나 인종학살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서 공의를 이루시는 분이다.
2014년 종이책으로 발간된 『아말렉의 비밀』은 2021년 교보에서 eBook으로도 출판되었다.
임봉대(에벤에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