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문제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 지금, 어크로스 펴냄, 2022
물난리가 났다. 비가 많이 내렸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의 소식이 들려온다. 홍수와 가뭄과 무더위의 소식이다. 우리나라 주위의 기단이 어떻고 저떻더란 설명은 들었는데, 요는 예년 같지 않은, 특이한 상황이라는 거다. 침수된 차량 위에 올라앉은 차주의 사진이 ‘강남 제네시스좌’라며 밈이 되어 웹의 게시판에 돌아다닌다. 위태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쿨한 모습으로 보인 모양이다. 롤러코스터에서 찍은 무심한 표정의 사진처럼 태연자약한 태도가 화재가 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우리도 화재의 사람들로 평가될 날이 멀지 않았다. 미래의 누군가가 인터넷에 박제된 2022년의 설교, 2022년의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본다면 ‘강남 제네시스좌’보다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더 큰 용량의 에어컨이 아니고는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특별헌금을 하자고 호소하는 영상 정도가 찾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특이한 기단 배치, 특이한 상황이 일상이 되어가는 어느 즈음에 교회들은 기후 이야기를 할까? 인류가 어느 정도 망하면 시작할까? 노아는 비가 많이 올 것을 혼자 알았다지만 우리네 목사님들은 뭇사람들이 다 떠들어도 언제까지 지금처럼 쿨하게 계실지, 나는 쿨하지 못해서 걱정한다. 주께서 오늘날에도 말씀하고 계시는 줄 모르지는 않을 텐데 혹시 기후관련 성경본문을 찾고 계시는 건 아닌지, 나는 쿨하지 못해서 답답하다. 당신 집에도 큰 에어컨 달아달라고 땡깡을 부리건 교인들 집에도 달아주었노라고 자랑을 하건 모두들 머지않아 큰 화재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기후나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무언가 내가 말하지 않았던 것,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수고를 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기후위기에 관한 책을 소개한다. 맞다 또 기후위기다. 그런데 불평하기 전에 몇 권 정도는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의 저자 곽재식은 지구에 있었던 다섯 번의 큰 대멸종 사건을 설명하면서 기후위기는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위기인 것을 짚어 말한다. 그리고 지금의 기후변화가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듭하여 지나온 지구의 자연적인 흐름이 아니라 인류의 활동으로 배출된 탄소로 인한 온실효과 때문이라는 것이 과학적 관측의 결론임을 밝힌다.
2001년, 당시 가장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던 미국은 탄소를 적게 배출하자며 구체적으로 목표치를 정했던 1997년의 교토의정서를 거부했다. 급성장하여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이나 인도는 교토의정서에서는 개도국이기 때문에 탄소를 부담 없이 뿜어대는데 미국은 선진국이라고 부담을 지는 상황이 싫었을 것이다. 2009년의 파리협정은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줄여야 한다는 정해진 양이 없다. 양을 정하자면 각 나라별로 낮은 목표치를 얻기 위해 다툴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할 과학자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안 줄이기 위해 주장을 만드는 데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이고 자연히 개발도상국은 불리해질 것이다. 양을 정하는 방법으로는 실질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파리협정의 목표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정도를 ‘섭씨 2도보다 현저히 낮게’ 유지하자는, 2라는 숫자와 현저히 낮게라는 표현이 선진국과 개도국의 상황을 대변하는, 조금 모호한 내용이다.
위의 사실을 토대로 저자는 기후위기의 문제가 대표적인 공유지의 비극이고, 죄수의 딜레마라고 말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주인 없는 목초지에 마을 사람들이 소를 방목하면 결과적으로 목초지가 황폐화 된다는 것이다.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서로 맞지 않을 때 개인의 이익만을 극대화한 결과 경제 주체 모두가 파국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선의를 믿지 못하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선택하여 불리한 결과를 맞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국가별로 정해진 탄소배출의 목표치나 허용된 양이 없기 때문에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따르고 그 결과는 파국이 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전기에너지나 수소에너지 활용에 대해 말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후 시민으로서 가져야할 마음과 할 일을 언급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 중에 정부와 정치의 역할과 그것을 종용하고 강제하는 시민의 역할에 관한 저자의 의견에 무척 공감한다. 그리고 궁금하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기후위의 상황에서 기독교인의 역할이, 목사로서, 목사의 역할이 정말 궁금하다. 지금부터라도 함께 찾아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