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원중 옮김, 아카넷, 2013
저자는 “자연사 책은 겨울에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고 했지만 필자는 무더운 여름 날 휴가 삼아 벼르고 별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 철학적이고 명상가적인 면모가 걸작 <월든>에 드러나 있다면 이 책에 담긴 8편의 에세이는 그가 40여년간 미국 북동부 지역의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생태학자요 자연주의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메사추세츠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보스턴에서 20여분 거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그 유명한 월든 호수가 있다. 그의 가족은 19세기에 유행했던 자연사 연구와 탐사에 열성을 지닌 집안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모든 동식물들을 직접 접하고 세밀하게 관찰하여 얻은 지식들이 그의 자연을 아끼는 사상을 키워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매사추세츠의 자연 곳곳을 산책하면서 거기에 서식하는 나무들, 물고기들, 꽃들, 새들, 짐승들, 곤충들을 탐사하여 매사추세츠 자연사를 기록했는데, 이는 단순히 과학적 사실과 현상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지녔는지를 시문학적으로, 그리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예언적인 기록들이다.
자연과 자연사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야말로 오늘날 볼 때 참으로 예언적이다. “땅을 단순히 정치적인 측면으로만 보는 것은 결코 그리 고무적이지 못하며, 인간을 정치 조직의 구성원으로만 간주하면 인간의 품격은 떨어지고 만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모든 지역은 쇠락의 징조만을 드러낸다.“(11) “건강은 사회 속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로지 자연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우리 발이 자연 가운데 서 있지 않으면 우리의 얼굴은 창백하고 납빛일 것이다...소나무의 향기만큼 건강한 향내가 사회에는 없고 고지대 초원에서 영속하는 생명체들처럼 폐부를 관통하며 생명을 복원시키는 향기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자연사 책을 일종의 특효약으로 곁에 두고 지내는데 그런 책을 읽으면 온 몸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12쪽)
그가 자연사를 기록한 목적은 다양하고 신기한 자연 현상들이나 동식물들의 생태를 묘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 속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우고자 함이었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알고 관찰하는 것 자체가 그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래서 “물고기의 이름과 서식지만 알게 되어도 물고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그런 마음으로 “가장 작은 나뭇잎에 눈높이를 맞추고, 그 넓은 들판을 곤충의 눈으로” 보라고 한다. “올바른 관찰 태도는 몸을 수그리는 것이다...지혜는 조사하지 않고 바라본다.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다...아무리 기계와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가장 건강하고 다정한 사람이 가장 과학적인 사람이며 인디언의 지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다.”(44)
저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 산책을 꼽는다. 산책은 “잠을 자고 마침내 깨어 고요한 겨울 아침” “마당에 찍힌 여우”나 “수달의 발자국”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무꾼이 버리고 떠난 오두막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꽁꽁 얼어붙은 초원 한 가운데로 흐르는 물 여우의 물속 거처를 관찰하기도 하고, 건강으로 가득 찬 숲 공기를 들이마시기도 하고, 숲 속의 나무들이 천이(遷移)되고 있는지도 유심히 살피고, 가을엔 가을 숲이 형형 색색으로 변화해가는 모습들, 때로는 야생 사과의 그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일이다.
그래서 산책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숲과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을 향해 여는 일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이 낮 밤 할 것 없이 살아 움직이며 산길과 숲 곳곳에 남긴 생명의 흔적을 바라보고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생명체들과 공감을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산책자가 되려면 하늘로부터 직접적인 섭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산책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둘레 길 여행을 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하다.
번역자 김원중은 옮긴이 해제 부분에서 “자연작가로서의 소로의 임무는 보통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자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전달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323). 소로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자연이 아주 빠른 산업화와 전쟁을 통해서 파괴되는 걸 보면서 생생한 자연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지극히 현대적 이슈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책 곳곳에 옛 고전 시구들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문체 자체가 만연체라서 읽고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점이 있지만, 환경 오염, 기후 위기, 코로나 19 팬더믹 등 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해가야만 하는 전 지구적 위기 시대 속에서 19세기 자연주의자의 예언적 호소에 마음을 둘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일독을 권한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