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 심장으로 묻고 답하다 - 삶의 목적 치유하기
<무엇을 위해 사는가> 데니스 린 , 쉴라 린 , 마태오 린, S. J. 지음 | 김인호 , 장미희 옮김 | 성바오로 | 2018년
코로나19가 여전히 우리를 붙들어 두고 있다. 다시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두려움과 불안함은 여전하지만 늘 그랬듯 우리는 가만히 있기보다 무언가를 한다. 어떤 길을,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 걸까.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갑자기 멈춰서서 너무 빨리 달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지친 영혼을 기다리며 힐링(healing)한다. 말을 타고 달리다가 어느 순간 말에서 내려 말을 자세히 살피며 누군가 앞만 보고 빨리 달리게 하려고 씌워놓은 눈가리개를 벗기는 필링(peeling)의 시간도 갖는다. 지금 나는 어떤 길을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길을 걷는 이유와 목적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일진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책의 저자는 자신의 삶 안에 봉인된 명령이 있다고 말한다. 저마다 세상에 태어날 때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를 알고 있기도 하고 모른 채 살기도 한다. 분명한 건 자신 안에 ‘봉인된 명령’(목적)이 가리워진 채로 살면 목적을 상실하거나 목적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능력감과 의미의 결핍감으로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고통받기 쉽다는 거다. 때론 삶의 목적을 쫓아 너무 많은 일을 해서 탈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봉인된 명령을 쫓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 없는 일에 열심을 냈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에게 의미 있는 ‘활동들’을 했다면 자신 안에 끝없는 생명력이 불어 넣어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야 자신 안에 봉인된 명령(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영적 가슴(heart)으로 자신이 걷고 있는 길, 삶의 목적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생명력과 연결될 수 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되고 삶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느낀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고 또 그런 일을 할 만큼 충분히 사랑받고 또 사랑하는 관계 안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이 치유되는 것이다. 자신 안에 ‘봉인된 명령’을 발견하는 그 길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책을 통해 잘 안내받을 수 있는데, 각 장 말미마다 제시된 ‘치유를 위한 나눔’ 프로그램들을 따라가보면 좋다.
나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창조세계 회복을 위한 방향을 정하고 한 길 걸으며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나는 기독교 환경교육 활동가로서 사람들이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기를 올해로 32년째. 창조세계를 지키고 돌보는 일이 때때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고, 때론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여 기뻤다. 물론 결과가 좋았더라도 그 변화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해 걱정이 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필요’를 알게 하는 게 중요하지 싶어, ‘탐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에 몰두했지만 늘 부족함이 컸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론,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었을까. 그래도 각 순간순간에 좋았던 걸 떠올려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창조주 하나님과 서로 간의 신뢰 속에 다른 삶, 다른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다른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실현하는 것이 쉽다고 하는 건 아니다. 어렵지만, 매일 아침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단 10분이라도, 매일 밤 잠들기 전 단 10분이라도, 깨어있는 동안 사람들을 영적 가슴으로 만나 조용히 질문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에 의미있는 변화는 올 것이다.
날마다 자신 안의 봉인된 명령을 바라볼 때에는 몸과 마음(영혼)이 수많은 생명과 공명할 수 있게 하는, 자신의 영혼을 살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영적 가슴으로 해야 한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종의 멸종이 우리를 크게 위협하고 있지만, 그 영적 가슴으로 날마다 살아간다면 창조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창조물을 돌보고,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며, 함께 생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필요 이상의 것을 바로 다 덜어내기는 힘들겠지만, ‘하늘 나는 새’들이 먹고 입고 거하는 것 – 즉 새들의 둥지가 새끼를 키울 만큼만 주변의 진흙과 풀, 나뭇가지만을 이용하여 지어지고, 옷은 자신의 털 한 벌 뿐임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보면, 지금의 탐욕으로부터 실제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창조 안에 오래 머물면 신음하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고 그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도 제대로 분별해내는 지혜도 얻게 될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탐욕스럽게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우리의 일상을 부추기는 사회시스템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하게 하는 능력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복적으로 봉인된 명령, 삶의 목적을 실천한다면, 나와 우리, 이 땅 신음하는 지구를 온전히 치유해낼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유미호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