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생이 글러먹은 이들에게> 현건우. 예지
제가 이 질문은 주변 친구들에게 던져보면, 어렵지 않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유여행의 매력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저 역시 여행을 떠났을 적을 되돌아보면, 놀랍게도 멋스러운 풍경이나 흥미로웠던 체험보다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던 우연의 장면들이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안정적인 여행이 주는 편안한 여유 역시 꽤나 매력적입니다.
동시에 여행이 남긴 발자국은 사람들에게 꽤나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죠. 누군가는 하나의 여행으로 인생의 방향성을 바꾸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반대로 예상치 못하게 펼쳐진 절경에 감탄사를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언제고 떠나보았던 여행을 돌이켜 보면 어떤 경험이 떠오르시나요?
이 책의 저자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러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나감과 동시에 저는 작가가 경험했을 다채로운 감정과 다양한 교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획한 대로 하루의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몸을 누일 수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 낯선 땅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등장했을 때의 당황감, 그리고 지친 다리를 이끌고 몇 백 킬로를 걷다가 우연히 만난 가벼운 바람의 냄새까지 얼마나 이 여정이 그의 마음에 감동이 되었을지 간접적인 체험임에도 저를 흥미롭게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작 산티아고 순례길, 즉 까미노(Camino) 순례와 그 이전 이후, 세 가지의 이야기를 들고 왔으면서 책의 제목은 <인생이 글러먹은 이들에게>일까. 실제로 이 책을 읽고 있는 삼촌께서 제게 “너는 인생이 글러먹지도 않았는데 그런 책은 왜 읽냐?”라고 하실 정도였으니,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긴 한가 봅니다. 하지만 곰곰이 인생이 글러먹었다는 이 표현과 이 여정의 연관성을 연상하며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러운 공통점을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머나먼 타지에서 무언가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심정이 들까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정말 막막하고 겁이 날 것이 분명합니다. 제 경험만 돌이켜보더라도 마음속의 짜증이 울컥 올라오기도 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또 그것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 친구들이 말했던 것처럼 자유여행의 묘미니까요.
이 책에서도 분명 직전 문단에서는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책을 몇 장을 넘겨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죠. 그런데도 책에서는 계속해서 “괜찮다”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지난번 토론토로 떠났던 여행 중 비행기를 겨우 아슬아슬하게 탄 적이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저는 별로 괜찮지 않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는데 말이죠.
조심스러운 제 추측이지만, 작가는 아마 ‘괜찮다’라는 말이 필요했을 겁니다. 길디긴 산티아고 길을 걷는 와중에 괜찮지 않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필요에 나온 ‘괜찮다’이든, 생각보다 상쾌하고 가볍게 ‘괜찮다’라고 말했든, 결국 그 괜찮다는 마음 하나가 그를 순례길 끝까지 이끌었습니다.
저는 그의 글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당장 아직 스물다섯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리고 여전히 제 인생에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원하는 대로 내 삶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만 같을 때도 아마 여행 계획이 틀어지는 것처럼 답답하고 속상한 기분이 들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과하게 너그럽고 무모하게 들릴 지라도 ‘괜찮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 우리를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이끌어줄 것이니까요. 아마 작가가 이 애정 어린 글에 ‘인생’이라는 단어를 담은 제목을 선정했다는 것은 어쩌면 저자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예상해봅니다.
아직 나이도 얼마 먹지 않은 제가 논하기에는 ‘삶’이라는 소재는 너무나도 무겁고 어렵지만, 이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자유여행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아 아쉽고 아찔한 기분이 들더라도 괜찮고, 나름대로 재미와 매력이 있는 그런 삶을 우리는 모두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나의 인생이 글러먹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는 않나요?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에 잔잔한 위로 필요하신 분들께, 제 멋대로 『인생이 글러먹은 이들에게』라는 제목 아래‘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라는 부제를 달아주고만 싶은 이 책을 추천합니다.
김은기(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