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성지 聖地 ·전장戰場
<예루살렘 성지 聖地 ·전장戰場>, 차옥숭 지음, ㈜그린비출판사, 2015년
이 책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성지聖地인 예루살렘이 오늘날 왜 전장戰場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시작된다. 먼저는 예루살렘의 종교적 의미를 세 종교 각각의 입장에서 살펴본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유대 민족과 하나로 묶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의 기록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 거룩한 근원과의 교감을 통해 과거를 현재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로마의 지배로부터 시작되어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 무슬림들의 점령,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와 그 이후 유럽 강국들의 팔레스타인 및 중동 지역에서의 각축전과 아랍민족주의가 어떤 배경으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역사적 정황들을 면밀히 살피면서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유대교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면으로 좀 더 이해(선민의식과 좀 유별나다고 생각한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사실 외부로부터의 억압과 고통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하게 되었고, 잘 몰라서 오해하고 있던 이슬람교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정복민을 대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64쪽)
저자의 말처럼 상대방에 대한 무지는 몰이해를 부르고, 몰이해는 최악의 경우 적대감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끝내 폭력적이 되면서 진실과 평화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새겨보게 되었다.
세 종교는 메시아에 대해 정결례와 안식일에 대해 각자의 경전에 대해 구원의 대상에 대해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모세에게 계시한 토라를 하느님의 계시로 인정하고, 그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같은 ‘하느님 나라’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 책과 한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고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종교 간의 갈등과 마찰이 일어나는 이유는 각자 자신이 믿는 종교의 절대성 혹은 우월성을 강렬히 주장하게 될 때이므로 자기 종교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종교의 존재와 가치를 겸허하게 인정하며 서로 공존할 수 있기 위한 차원으로 저자는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을 소개해 주고 있다. 많은 신학자들과 그들의 신학을 짧지만 명쾌하게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 주고 있다.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있었던 간첩 조작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은 시온주의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시온주의는 원래 유럽의 민족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지도자들이 민족 부흥의 전망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실현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식민주의 운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바로 이것 식민화를 목표로 하는 이민의 물결이 팔레스타인을 전장으로 물들이기 시작한 흐름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기원전으로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적 갈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원한 관계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과 아랍인을 연합군 측에 끌어들이기 위해 영국이 취했던 이중외교정책(142쪽)에서 비롯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 이후 중동은 미국과 소련 간 정치싸움의 대리 전쟁터가 되었고 강대국의 패권 다툼 지역이 되었다.
이스라엘 노동당 정부에 의해 법률로 명문화되고 제도화된 팔레스타인인의 재산의 몰수와 배제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곳이 무력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하(160쪽)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아픔은 현재적이다. 이렇게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가혹한 현실에서 종교는 개인들이 대응하는 방식에 또다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178). 팔레스타인인이 처한 곤경에 대해 뚜렷한 민족-종교적 의제를 갖고 등장한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 같은 조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178)는 것이다.
종교와 종교 사이를 넘는 하나의 희망으로 저자는 여성들의 평화를 위한 연대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전쟁과 증오가 없는 세상,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세상을 희망하면서 민족과 종교를 넘어 활동하는 여성들에게서 저자는 희망을 본다. 그리고 평화의 마을인 네베 샬롬(유대인과 아랍인의 공동체)을 통해서 또 하나의 희망을 보고 있다. ‘네베 샬롬에 모인 사람들은 주어진 운명을 거슬러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 간다. 미래의 새 생명들에게 함께하는 평화로운 삶을 주기 위해서’(210).
이 책을 읽으면서 聖地인 예루살렘이 지금 현재 戰場이 된 것은 전적으로 종교 갈등 때문이라기보다는 특히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이익관계에 의한 현실의 정치적 상황 때문인 이유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시온주의의 시작도 실은 정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 속에서 강대국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결정했다. 한국의 분단이 강대국의 힘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다’(210).
‘죽임’으로 ‘죽음으로 가는’ 행렬을 멈추고 다시 살기 위한 답은 오히려(?) 다시 종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 ‘종교의 근본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데 있’(11)기 때문이다. 이 목적에 충실히 답하려면 종교는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름을 그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를 겸허하게 인정하면서’(195) ‘삶의 진솔한 요구와 외침을 들을 줄 아는 자세, 즉 주위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현장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196)할 것이다.
저자는 세 종교가 처했던 역사적 정황을 맥락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주면서 신학적으로도 세 종교를 비교·탐구하여 그 속에서 공유점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직접 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이 삶으로 말하는 생생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보다 진실이 있는가. 저자의 펜은 단지 종이위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연극의 막이 내렸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처럼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내가 너무 무지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운 깨달음, 그리고 현장을 누비며 참혹한 현실을 바라보던 저자의 안타까운 시선과 진정한 평화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을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샬롬의 세상을 꿈꾸며...
주은숙 전도사 (새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