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휴가에 SF를 바칩니다
<삼체>, 류츠신, 자음과모음, 2022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독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이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설교나 목회에 도움이 되는 책, 평신도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좋은 책으로 꼽습니다. 좋은 책의 기준이 신앙이라는 주제에 한정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비신앙인들의 독서습관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정말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책을 읽습니다. 그들에게 좋은 책이란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책을 뜻합니다. 지적인 저변을 탄탄히 확보해서 삶의 토대를 삼으려고 합니다. 독서습관을 비교해보면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격차는 어마어마합니다.
인문학+과학. 현대인들이 지적 대화를 위해 읽는 독서의 주제입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과학은 필요 지식이 아니라, 필수 지식입니다. 인문학의 핵심인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과 과학. 어찌보면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문학입니다.
알베르트 까뮈는 자기 소설 <이방인>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이 소설은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 판결을 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통해 까뮈는 자기 시대의 역사와 사상을 망라합니다. 이처럼 문학은 인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고, 문학을 읽는 것보다 좋은 독서습관은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문학과 과학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문학이 SF(Science Fiction)입니다. 앤디 위어의 <마션>, <프로젝트 해일메리>나, 톰 스웨터리치의 <사라진 세계>처럼 휴가에 동행하기 좋은 단행권 소설도 있지만, 오늘 소개하려는 SF 소설은 류츠신 작가의 <삼체>입니다.
<삼체>는 지금까지 출간된 SF 소설 중 최고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엄청나게 재미있습니다. 총 세 권으로 이루어진 다소 긴 분량의 소설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이 소설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중국 현대소설의 질감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는 것입니다. 서구의 문체에 익숙한 우리 입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세련된 문체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과학소설답게 외계인, 양자역학 같은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혹시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과학 기술이 필요한가, 양자역학의 비밀을 풀지 못한 문명과 풀어낸 문명의 격차는 얼마나 클 것인가 하는 주제들이 현실감있는 이야기를 통해 전개됩니다. 그러면서도 문화혁명기의 끔찍했던 역사도 상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삼체>는 지구로부터 4광년 떨어진 삼체 세계의 외계인이 침공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한 이유는 인류 멸망을 바라는 비밀결사조직 때문입니다. 이 결사조직은 인류의 만행을 보면서 인류를 혐오하게 된 정치인, 환경운동가, 과학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예원제라는 중국 여성 과학자가 있습니다. 10대의 예원제는 중국 문화혁명의 철퇴를 맞습니다. 당시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는 양자물리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받고 공개처형을 당합니다. 교조적 혁명사상에 경도된 젊은 홍위병들은 양자역학이 혁명사상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예원제의 아버지에게 유죄판결을 내립니다. 어린 예원제는 아버지가 동료교수와 학생들이 운집한 광장에서 홍위병들에게 허리띠와 몽둥이로 처참하게 맞아 죽는 걸 목격합니다. 예원제는 반동분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노동교화형에 처해져 오지 벌목장으로 끌려갑니다.
이 일로 예원제는 복수심을 품고 외계인을 끌어들여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합니다. 과연 인류의 운명은… 이번 휴가 소설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교조적인 혁명 사상에 경도되었던 홍위병들에 대해서만 조금 더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세상을 흑백으로 바라보는 교조주의와, 치기 어린 젊은이에게 흑백사상을 주입하여 전위대로 이용하는 일. 우리 사회를 일그러뜨리는 가장 사악한 일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