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저, 메이븐, 2021
오랜 가뭄에도 날로 푸르러 가던 숲들이 한 바탕 퍼부은 장맛비를 맞으면서 녹음이 더욱 짙어졌다. 이 찬란한 푸르름, 얼마나 큰 위로와 쉼을 주는지, 숲이 아니면 어떠랴? 차 겨우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도시 주택가 골목마다 벽에 붙여 만든 작은 화단에 심겨진 나무들, 거리와 공원에 홀로 세워진 온갖 나무들 역시 애잔하면서도 굳세게 그 자리를 지키며 행복을 선물한다.
나무는 어디에 심겨져 있든지 귀하고 복된 존재들이다. 나무들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자기가 줄 수 있는 선물을 내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들에게 제대로 고마움의 예를 표해 본 적이 없었다.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책을 보고서야 나무에 대한 나의 무정함을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 의사 우종영은 30년이 넘도록 수천 그루의 아픈 나무들을 돌보는 중에 나무들로부터 운 배운 단단한 삶의 지혜 35가지를 세 장으로 나누어 소개했다. 제1장 “어느 날 나무가 내 곁으로 왔다”는 주목나무, 이팝나무, 소나무, 오리나무 등 흔히 볼 수 있는 14 종류의 나무들이 준 감동의 메시지들이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썩어 천 년, 합해서 삼천 년을 이어 간다는” 주목, 태백산의 해발 천 미터 깊은 계곡에서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붉은 나무, 주목이 짧은 인생들에게 건네주는 영원의 소리를 들려준다. 쌀밥처럼 꽃이 핀 이팝나무는 배고프던 어린 시절, 하지만 그래도 따뜻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한다. 태백의 강추위와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소나무가 고개 숙인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조금은 허풍을 떨어도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41)
“전국 어디든 5리마다 한 그루 씩은 볼 수 있었다”는 그래서 “삶의 길 한 모퉁이에서 쉬어 가라고 하는 쉼표” 같은 오리나무, “아무리 좋은 환경에 풍족한 영양분을 주어도 잎을 떨구고 죽어가는 나무들에 비하면,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기특한 아까시 나무, 자작나무 껍질로 연서를 쓰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자작나무 예찬, 눈밭에 떨어진 붉은 꽃에서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함을 일깨워 주는 동백, 그리움을 달래주는 어머니 품 같은 느티나무, 두 줄기가 서로 의지하기 위해 서로 꼬아서 위로 뻗어 나가는 등나무의 생존 방식에서 발견하는 인연에 대한 소중함 등등 각각의 나무들이 주는 따뜻한 메시지를 포착하는 저자 공감 능력이 부럽다.
제2장 “나무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에선 모과, 노간주, 라일락, 서어나무 등 11 종류의 나무들로부터 배운 바를 언급하고 있다. 바로 먹지도 못하는 못생긴 열매로 천대받지만 가까이 두면 향이 나고, 끓이면 더할 나위 없는 차가 되는 모과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그 안에 감추어진 깊은 속내에 있음을 배운다. 노간주나무는 “절대 나무가 자라지 못할 것 같은 곳에만 뿌리를 내린다. 그런 것처럼 좀 바보스럽게 살 필요도 있음을 배운다.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 그리고 제대로 된 꽃을 피우기 위해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대나무에게서 받아들임의 용기를 배운다. 북한산 서어나무 행궁터에 있는 서어나무는 35년 지기 친구처럼 곁에 있어 기분 좋고 편안하게 해 준다. 상대방을 압도하려고 하지도 않고 따스한 온기를 전해준다. 그런 친구, 그런 나무 곁에 있으면 어찌 인생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아주 연한 줄기를 지녔지만 산야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고 흰 꽃을 풍성하게 피워내는 사위질빵에게서 끈질긴 생명력을 배운다.
제3장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선 나무들의 독특한 생존 방식을 통해 배운 삶의 지혜들을 나눈다. 연리는 서로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말한다. 연리 현상이 뿌리에서 생기면 연리근, 줄기에서 생기면 연리목, 가지에서 생기면 연리지인데, 이 가운데 두 나무 모두를 잘 살게 하는 현상은 바로 연리지 현상이라고 한다. 때문에 저자는 평생을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면 연리지처럼 살아갈 때 서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무를 키우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저자는 나무를 키우면서 조급증이 많이 사라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나무를 키우는 일이 끊임없는 기다림의 과정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 여유를 찾아가야만 가능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200). 또한 늙고 병든 잣나무 치료를 포기한 후에 저자는 병든 나무를 살리려 치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으면서 인간의 죽음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배웠다.
나무들은 어떤 땅이든 이미 심겨진 땅, 마치 숙명 같은 땅에서 생존을 위해 운명과 싸우기도 한다. 때로는 열매를 맺지 않는 해거리, 찬바람 들 때 낙엽 만들기, 가지치기, 그리고 줄기나 가지를 구부리는 곡지 등을 통해 나무들은 운명과 싸워 나간다. 우리 인생도 때로는 이같은 쉼과 내려놓음, 그리고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므로 나무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고 한다.
끝으로 “식물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부록으로 남겼다. 아무튼 병든 나무들을 치료하면서, 또한 그 나무들을 스승으로 삼고 배우고 깨우친 바 귀한 메시지들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 있는 것처럼 평안하고 행복하다. 일독을 권한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