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를 알아 생명살림의 씨앗을 싹 틔운다
(<때를 알다 해를 살다 : 생명살이를 위한 24절기 인문학>, 유종반,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9)
몇 차례 절기를 이해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아직도 어려운 24절기. 기후변화로 계절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란 핑계를 대 본다. 그래도 때때로 마음을 흔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이 뭔지 모를 생명에 대한 기억을 불러들인다.
오늘은 7월, 비닐봉지 안 쓰는 날이 있어 플라스틱으로부터 해방하는 꿈을 꾸면서 더위는 물론 인공적으로 일으키는 찬 바람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계절 감각을 살려보려 책을 손에 들고 묻는다.
“더위야 더위야 뭐하니” 곧 작은 더위라는 듯을 가진 ‘소서’다. 바야흐로 더위가 시작되는 절기다. 장마전선이 한반도 허리르 가로지르며 장기간 머물러 습도가 높아지고 많은 비가 내리는 장마철이다.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해지는데, 음력 5월 단오 즈음 밀가루 음식이 제맛을 낼 때라서 국수나 수제비를 즐겨 먹는 때다. 조상들은 더운 여름 여름철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차가운 성질을 가진 밀과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다. 채소로는 호박, 생선은 민어가 제철인 때다. 무궁화, 회화나무, 꼬리조팝나무, 참나리, 좁쌀풀꽃이 피고, 매미가 나타난다고 했던 때다.
하지만 이미 예년보다 20여 일이나 앞서 폭염이 계속되고, 대서 무렵 온다는 최강의 더위가 지금부터 기록을 경신하며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면 낮의 길이가 가장 길어진다는 하지가 올 것이고, 그 후로 서서히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태양의 위치가 가을로 넘어가는 입추가 올 것이니 이 더위쯤이야 해본다.
‘때를 알다 해를 살다’의 저자 유종반은 “때를 알고 살아야 한다. 지금 나는 어떤 때이며, 내가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늘 깨어 있으려면 먼저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생명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 다음 나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어떤 시대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하고, 천지 자연 흐름인 절기와 하나뿐인 지구 생태계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사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해 없이는 살 수 없는 온 우주 만물을 통해 길러지는데, 그 때를 따라 안성맞움으로 살아야만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을 온전히 누릴 수 있고 또 그대로 나눠줄 수 있다. 봄철은 나른해지기 쉬우니 쑥, 달래, 냉이를 통해 비타민을 공급받고, 여름철은 더운 날씨에 맞춰 오이, 감자, 토마토를 통해 시원함을 선사 받는다. 가을철은 더운 기운을 갖고 있는 곡식과 과일을 통해 겨울을 날 준비를 하게 하는데, 특히 고구마는 오래 둘수록 단맛이 강해져서 한 겨울 추위를 잘 버티게 돕는다.
오늘도 때를 따라 산다는 게 뭔지 싶어 절기의 이름을 헤아리며 계절 묵상을 해본다. 생각해보면, 때를 따라 산다는 것, 절기살이란 모름지기 철 따라 주시는 것으로 생명을 얻고 또 풍성히 누리는 것이지 싶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하늘 나는 새와 들의 꽃처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않고’ 사는 것이지 싶다.
요즘 햇빛과 땅의 기운을 듬뿍 받지 못하고 바람결도 느끼지 못한 채, 분주한 삶을 살다 보니 철을 모르고 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냉난방 완비에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채소며 과일은 우리에게서 계절감을 빼앗아 갔고, ‘더 빨리’를 외치며 속도감을 즐기다 보니 길가에 핀 꽃은 물론 지저귀는 새소리조차 들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숨 돌릴 틈 없이 살다 보니 때론 삶의 목적과 방향조차 놓치기 일쑤다. 자신이 먹고 입고 쓰는 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 리 만무다. 나의 일상이 다른 사람과 후손, 자연이 누려야 할 지구를 지속 불능하게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챌 리 만무다.
그러니 우리 안에 숨겨두신 ‘하나님의 씨(요일 1:9)’를 발견해 싹틔우기 어렵고, 일상을 욕심껏 살아 누군가의 필요를 빼앗기 십상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대다수가 자동차와 일회용품 사용에 거리낌이 없다 보니 지구 생태용량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해 동안 쓸 양을 4월 2일이면 다 쓰고 다른 생명의 것을 빼앗아 살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그리고 종의 멸종이라는 지금의 상황은 그에 따른 결과다.
때를 알고 해에 의지해 사는 절기살이를 할 수 있면, 우리 안의 하나님의 씨앗, 생명살림의 마음을 싹 틔워낼 수 있지 않을까. 창조주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때를 살펴 철없는 것들을 분별하고 그를 덜어내는 일상영성훈련을 해보자. 그리고 가능한 대로 하나님의 자연이 어떻게 때를 따라 사는지 들여다보자.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지 않다. 자신의 집 부근의 나무들과 친해 보고, 창가에 화분 하나를 두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말 걸기’ 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꽃이 필 때만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싹트고 자라고 시드는 과정 전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며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지혜와 모두의 풍성한 삶을 회복하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창조의 때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숨을 의식하며 하루 한 번 이상씩 자신의 일상을 돌이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밥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곳, 일하는 곳에서 온 우주만물이 나를 어떻게 지지하고 있는지 느껴보자.
교회가 교회력에 따른 신앙교육을 할 때 24절기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때를 교육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비록 기후위기로 절기가 뒤죽박죽되어가고 있지만,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계절의 표준점’, ‘해가 만들어낸 자연 흐름이자 생명 기운의 흐름을 스물네 가지 이름으로 표현한’ 절기(節氣)는, 사람들이 철들게 하여 다른 생명과 살아가야 할 순리,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게 할 것이다. 절기에 맞춰 말씀을 선포하고, 그에 맞는 먹거리를 교회 밥상과 교회학교 간식으로 주어보자.
생명 이해가 깊어질수록/ 생명 사랑은 커지고/ 불편함은 늘어가지요/ 불편함이 더 있어야/ 내 생각은 바꾸어 지고/ 불편함이 더 커져야/ 내 삶은 바꾸어 지고/ 불편함이 더 많아야/ 우리 세상은 바꾸어 지지요/ 생명 공부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지요/ 불편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생명 아니지요/ 왜냐면 우리 세계는 생명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유종반 시, ‘불편한 진실’ 전문)
때를 알고, 그를 기다리며, 그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묻는다.
“나는 시방 어느 때를 살고 있는가? 나를 나 되게 해주는 생명은 지금 나를 어떻게 지지해주고 있는가?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유미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