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언과 분별
<예언과 분별>, 월터 모벌리 지음, 박규태 옮김, 감은사, 2021
한국교회 곳곳에서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은사를 경험했다고 하면서 각종 예언을 남발하는 자칭 예언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많은 부분 이 예언은 “미래를 알아내는 것”에 국한한 무속적이고 점치는 것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미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대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과 분별>은 진정한 성서적 예언이 무엇인지를 성경 본문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예언과 분별>의 저자 영국 성공회 성직자이며 더럼대학교의 성서해석학과 구약신학 교수인 월터 모벌리(R. W. L. Moberly, 1952-)는 그의 저서 <예언과 분별>에서 참된 성경적 예언을 예레미야, 미가야, 엘리사(발람), 요한, 바울을 들어 말하고 있다. 모벌리에 따르면, 예언이란 결국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 성품이 인간의 언어를 통해 중계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위임하신 예언적 말은 철저하게 그분의 본질과 속성을 반영하고 투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예언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경험해야 한다. 모벌리는 요한에게서는 타자를 위한 사랑이, 바울에게서는 타자를 위한 자기 비움과 희생의 행위가 참된 예언의 기준이었다고 말한다.
모벌리 교수는 성경 본문과 인물을 분석하여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본질과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을 철저히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목차를 보자.
1장 예언은 무엇이며 예언의 유효성은 확인될 수 있는가?
2장 예레미야: 분별 기준을 정립하다
3장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진정성과 분별의 대가
4장 엘리사와 발람: 분별 능력을 주심과 주시지 않음
5장 요한: 분별의 열쇠로서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사랑
6장 바울: 십자가를 본받는 삶과 진정한 사도를 분별함
7장 오늘날의 예언과 분별
좀 더 자세히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린도후서 4:12에서는 바울이 사도의 진정성을 분별하는 방법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그는 하나님을 대언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로 진정성을 요구하면서, 예언자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도덕적 실패를 꼽았던 구약성경의 독특한 강조점을 그대로 계승한다.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예수가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께 신실함을 다하신 것을 분별의 열쇠로 삼음으로써 구약성경에서 이어받은 도덕적 관심사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십자가의 형상을 본받는 방식으로 변화시킨다. 고난 중에 신실함을 보인다는 패턴은 이미 예레미야와 미가야에게도 존재했다. 두 사람 모두 죽기까지 신실했다.
우리가 살펴본 본문 중 진정한 예언자를 전통적 의미의 “승자”로 묘사한 본문이 거의 없다는 것이 놀랍다. 예레미야의 사역은 동시대인들 중에서 거의 열매를 맺지 못했으며, 이는 예레미야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가 “민족과 왕국들 위에 세우심을 받은 것”과 자신이 다른 사람의 손에 비참한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 사이에는 첨예한 긴장이 존재한다. 미가야도 주목받지 못했으며 옥사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바울이 자신의 사역과 여행을 설명한 내용도 영광이나 “승리”를 내세운 과거 이야기들과는 정반대 모습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삶을 주를 향한 신실함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 바울의 주님도 삶과 사역에서 잔인한 배신과 고문을 당하고 치욕스러운 공개 처형으로 최후를 맞았다. 정경에 포함된 목소리들은 진리를 위해 고난당한 이들의 목소리다.
예언의 진정성 분별의 문제는, 이를 깨닫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살아 있는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 즉 “나는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가? 혹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의 문제를, 특별히 성경의 예언자(사도)를 부각시켜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사귀는 친구, 우리가 선택하는 인생의 반려자, 우리가 고르는 직장, 우리가 주목하는 광고, 우리가 돈을 쓰는 방식, 우리가 삶에서 우선시하는 가치, 우리가 절망과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식, 우리가 인생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영역에서 신뢰할 만한 근거들에 올바로 주목하지 못하면 고통과 좌절과 방황과 상실이 이어질 수 있다.
모벌리 교수는 이 책에서 성경 본문을 철저히 분석하여 예언을 분별할 성경적 원리를 찾아낼 뿐 아니라 그 원리를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씨름한다. 삶의 열매가 뒤따르지 않는 거짓 예언이 난무하는 시대, 예언자의 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이 시대에 하나님의 참 음성을 분별하는 기준에 대해 고민하게 할 소중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목회자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언자와 사도들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신구약 본문의 주석을 통해 진정한 예언과 분별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홍기석 목사(로마연합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