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안용태 지음, 도서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2020
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제목만 봤을 때는 영화평론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읽어주는 인문학? 그런데 읽어보니 중심은 영화라기보다는 인문학이다. 영화‘로’ 읽어주는 인문학!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사실 철학은 쉽지 않다. 그러나 영화를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몸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잘 먹게 되지 않는 재료를 누구나 좋아하고 잘 먹는 메뉴에 넣고 맛있게 요리해 내놓았다. 한층 더 영양가 높게 만들어진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더 건강해진 기분이 든다.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들에게 던져지는 명제들에 대해 그 개념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것을 우리 현실의 삶의 자리에서 보기에 영화만큼 좋은 도구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사실 끊임없는 인간과 삶에 대한 탐구이니까.
소개된 20편의 영화에서 내가 본 영화는 겨우 서너 편 정도이고, 더구나 본지 오래된 영화들이었지만, 이 책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신비적 체험 그리고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의 대립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으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과학적 합리성은 신비로운 체험 따위가 더 이상 설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고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화적 상상력을 퇴보시킨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 영화의 내용을 통해 독일의 종교학가 루돌프 오토의 ‘누멘적 감정’에 대해 소개해 주고, 또 엘리아데가 성현(聖顯0이라 부르는 것 즉 결국 성스러움이라는 것은 초월적 본질로서 이데아와 같은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세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주관적 경험을 의미하는 것임을 영화의 해설과 해석을 통해 공감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어둠 속의 댄서>라는 영화를 통해서는 바슐라르를 만난다. 그의 행복의 시학과 몽상이라는 개념 그리고 몽상이 행복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이유인 물질적 이미지와 상상력에 대해. <쇼생크탈출>에서는 니체의 고귀한 인간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는 노예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가치를 충만하게 하여 고통스러운 상황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거듭나게 하는 고귀한 인간에겐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위버멘시’인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로 인간 행위 결정론과 인간 행위 비결정론에 대한 논의를 통해 책임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영화는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삶이 불안과 절망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삶이 좌우되는 유한성·필연성’과 ‘절대적인 것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무한성·가능성’의 종합이며 이를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삶이 좌우되는 유한성에 집착하게 되기 쉽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고(라캉) 자기의 시간 안에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을 벗어나고자 무한성을 향해 나갈 때 인간은 진정한 구원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불안은 참된 삶으로 나를 밀어주는 추진력이 되기도 하다는 것이니, 불안이 느껴지는 것을 불안해 하지 말고 기쁘게 맞이하기로 한다.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에서는 ‘지옥이 되어버린 타인이라는 감옥’을 본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 상호간에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시선의 투쟁이 발생하게 된다. 영화에서 크리스타의 자살은 시선의 투쟁에서 패한 자가 보여줄 수 있는 비극적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무르>는 죽어가는 타인의 얼굴에서 나의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 레비나스는 죽음을 절대적 타자라고 말했다.
여기서 소개한 영화들 외에도 한편 한편 영화와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고 간단치 않다. 그런데 무겁지는 않다. 아니 둔탁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가장 실력 있는 선생님은 가장 쉽게 가르친다. 아마 작가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책은 줄줄 읽히는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삶과 나를 둘러싼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가 쓴 철학에세이보다 오히려 훨씬 더 핵심을 찌르는 명징함이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았던 철학이 어느새 바로 내 옆에 와 있다.
해석에는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는 삶에 대한 긍정성과 인간에 대한 희망적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주은숙 전도사 (새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