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의 죽음
<나무의 죽음>, 차윤정, 웅진지식하우스, 2007
숲 학자인 차윤정 박사의 <나무의 죽음>. 이 책에는 부제가 달려 있다. ‘오래된 숲에서 펼쳐지는 소멸과 탄생의 위대한 드라마.’
이 책에서 저자는 ‘큰 나무의 죽음은 숲에 주어지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비록 나무는 죽어 쓰러지고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과정을 거치지만, 죽은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크고 작은 생명들의 치열한 모습은 숲이 어떻게 탄생하고, 소멸하고, 부활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죽은 나무는 숲을 끊임없이 진화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그리하여 오래된 숲은 더 이상 적막하고 음산한 공간이 아닌,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영원한 삶의 공간으로 변모함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나무는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수많은 생명들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숲을 살리는 고귀한 삶의 터전이요 자양분이 되어, 다른 생물들로 부활함을 <나무의 죽음>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 나무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생을 돌아본다.
죽어서도 뭇생명의 삶의 터전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나무를 보며 ‘과연 우리의 삶은 내일의 의미를 더할 참 오늘을 살고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현재 누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 천년만년 이어질 것처럼 그 달콤함에 취해 종말론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나무의 반만이라도 닮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모할까?
이 책에서 나오는 한 대목을 소개하며, 나무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마지막은 어떠해야 할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무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죽은 나무의 거대한 몸체는 숲의 다양한 생물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숲에서 나무가 갑자기 죽어 쓰러지는 일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나무라도 상당 부분 이미 죽은 조직을 지니고 있습니다. 50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나무는 죽은 조직을 통해 499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몸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
나무의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반쪽입니다. 나무가 사는 과정은 자신을 위한 내적 투쟁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나무의 죽음 이후의 삶은 자신의 모든 것을 숲으로 되돌리며 다른 생물들의 삶으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나무의 죽음 이후는 훨씬 많은 생물들과 관련됩니다. 우리의 눈을 숲에서 숲바닥으로 돌리면 푸른 숲에 묻혀 있는 절반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봄, 새잎을 피워내지 않는 나무는 완전히 죽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죽음과 더불어 지내온 세월은 덮어두더라도 죽은 나무의 그 흔적이 없어지는 데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살아온 세월과 거의 맞먹는 시간입니다. 나무가 살아서 성장하는 과정은 숲의 자원을 사용하는 과정이지만 생명을 잃은 나무는 이제 사라질 때까지 자원을 되돌리는 과정에 놓입니다.”
이 혁 목사 (의성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