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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6-26 23:42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747 [128]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김영봉 저, IVP, 2003

 

도발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교회 좀 다녀본 분들이라면, 이 쌩뚱맞은 문장이 함의하는 바를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 19:24) 한마디로 이 물음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부자에게 천국은 금지된 곳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영봉 목사는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라는 책에서 이 물음에 정면으로 대답하고 있다. 그는 송명희 씨의 고백적 시 ‘나’의 노랫말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서두를 열고 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 (생략)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진짜 공평한가? 무엇이 공평하단 말인가? 결국 이 찬양은 “나는 세상적인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는 극단적인 명제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다. 아멘이 나오시는가?

 

그동안 한국 교회는 물질적인 번영과 하나님의 복을 동일시 해 왔다.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마침내 얻어내야 할 보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개신교가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의 산업화 시기와 맞물려, ‘믿음=성장=부=축복’의 공식은 신앙의 주류를 이루기도 했다. 교회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믿고 간구했더니 큰 복을 받았다”식의 간증이 넘쳐났다. 이 속에서 가난함은 채워지지 못한 ‘부족’과 ‘결핍’이라는 인식이 한국 교회의 지배적 정서가 되었다.

 

이런 사고를 대표하는 것이 ‘기독교 청부론’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은 정직하게’, ‘재정을 사용하는 방식은 투명하게’, ‘나누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 즉, ‘많이 벌어 잘 쓰자’라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세상적 만족’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오고가며 양쪽을 다 만족시켜준다. 그래서 이것이 교회 안의 정설(定說)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풍조를 심각하게 염려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부르신 목적과 지향이 “깨끗한 부자되기”로 흘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소명은 “부유한 삶”이 아니라, “거룩한 삶”이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하나님 주시는 능력으로 많이 벌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더 많이 사용하면 좋지 않냐’고. 김영봉 목사에 따르면 이것은, 하나님의 요청과 인간의 성정사이를 오고 가며, 적당한 타협점에 찾아가는 회색지대일 뿐이다. 너무 레디컬한가?

 

아시는 것처럼, 돈은 그것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또 자산 얼마부터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어디부터가 하나님의 복이고 어디까지가 세상의 만족일지 분별하기도 쉽지 않다. 

 

핵심은 ‘양’과 ‘정도’에 있지않고, ‘자세’와 ‘지향’에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전면적/무제한적/총체적인 부르심이다. 전부를 드리겠다는 고백이 있을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만하면 깨끗하지’ 혹은, ‘이정도면 남들보다 낫지’ 등의 기준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마주한다. 누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낙타만 바늘 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토끼도 동일하다. 부자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어떤 사람이기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는지’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자신의 거룩한 지향으로 삼는지’이다.  

 

필자는 이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쉽게 ‘내가 돈을 통제하고, 도구로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재물은 언제나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만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기독교인이 꿈꾸는 삶이란, 경제생활에 능통한 신자가 아니라, 그저 신실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돈에 울고, 돈에 속고, 돈에 아파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우선순위가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신동훈 목사 (마포 꿈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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