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의 희망
<어둠 속의 희망>, 리베카 솔닛(설준규 옮김), 창비, 2017
얼마 전 우리 와이프가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책 표지를 보니, 남성들의 ‘맨스플레인’(man+explain)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해 세계적 공감과 화제를 몰고 온 리베카 솔닛 아닌가! 나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와이프가 보기에는 여전히 멀었다고 여기는 것인지, 시큰둥하게 책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웬걸 책 내용은 구구절절 내게 해당하는 문장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요사이 정치 뉴스만 보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내가 측은해 보였던 모양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으로 모든 남성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유명하다. 동시에 그녀는 대학생이던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의 현장에 직접 참여해 온 전방위적 활동가이기도 하다. <어둠 속의 희망>은 바로 그녀의 이런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역작으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함께 리베카 솔닛의 ‘희망 3부작’으로 불린다.
<어둠 속의 희망>은 2004년 초판이 나온 이래 제2판, 3판이 거듭 출판되었을 뿐 아니라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다시금 널리 익히며 새로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리베카 솔닛은 <어둠 속의 희망> 전자책을 한시적으로 무료 배포했고, 일주일 만에 3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목격하며 절망한 이들이 그녀로부터 희망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까닭이다.
리베카 솔닛은 <어둠 속의 희망> 개정판 서문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쓴 것은 부시 행정부의 권력행사가 최고조에 달하고 이라크 전쟁이 개시된 데 따른 엄청난 절망감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그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하지만 절망감, 패배주의, 냉소주의, 그리고 그런 상태의 주요 원인인 기억상실과 갖가지 가설은 극히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소멸하지 않았다. 희망을 옹호할 증거는 무척 많다" (7쪽)
<어둠 속의 희망>은 시애틀의 WTO 반대 시위, 9·11 사태,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같은 당대 사건은 물론 멕시코의 사빠띠스따 운동,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진보 세력의 역사적 성패와 제3판에 추가한 글을 통해 최근의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운동,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까지 진보 세력의 성과와 실패를 두루 살펴본다. 리베카 솔닛의 조언과 격려가 남다른 것은 그녀가 시애틀 WTO 반대 시위에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체포되는 등 현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으며, 지금도 각종 시위의 일선에 열렬히 나서는 활동가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 이 책은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을 다룬 글은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편견을 깨뜨리면서, 적절한 표현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등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는다는 그녀의 글쓰기가 탐난다.
리베카 솔닛은 '절망의 시대에 변화를 꿈꾸는 법'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을 통해 '희망', 그것도 아주 현실적인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희망은 구체적 가능성과 결합된 넒은 전망, 우리에게 행동하라고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전망이다. 그건 '모든 게 나빠지고 있어' 라는 식의 서사에 맞서는 것일 수 있지만, '모든 게 잘돼 가고 있어' 라는 식의 화창한 서사도 아니다. 그건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관한, 돌파구를 열어두는 설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11쪽)
그녀의 희망은 섣부른 낙관이 아니다. 체념적 비관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비관과 낙관을 뚫고 행동하는 희망이다. 불가리아 작가 마리아 포포바의 말처럼 "희망이 빠진 비판적 사유는 냉소지만, 비판적 사유가 빠진 희망은 치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