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
<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2011
‘시’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일상에서 자주 불안함과 무서움을 느꼈다. 자신이 시계 톱니바퀴처럼 신속하게 휩쓸려 돌아가는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시’ 밖에 없다고 했다. 그나마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으며, 틈 속에 숨어있는 ‘순수’라는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쉼터. 그 친구는 놀람 가득한 세상 속에서 적절하게 놀라고, 모든 상처있는 것들을 위로하며, 때론 자신을 제대로 절망할 수 있게끔 인도하는 ‘시’가 위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시’는 낭만적인 배설이라고 받아쳤다. 시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는 ‘문학’의 한 분류에 불과하며,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허공의 세상이라고 말했다. 실제의 삶이 아닌 매트릭스에서 헤엄쳐 다니는 가장 쉬운 ‘풍류’라고 몰아쳤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당시의 나는 참으로 팍팍했으며, 무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 역시 ‘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만, 내가 시를 대하는 방식은 편안하고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치 어려운 형이상학과 같은 철학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인식했던 내게 ‘시’는 사람의 변화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 보였다. ‘시’ 자체가 인생이며, 삶이라는 생각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인정하게 되었다.(난 참 이성적 인간인 듯 쉽다. 이런 것을 인정하다라고 표현하다니.)
바로 일상에서의 평범한 ‘시인’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자세히 보니 내 주변에도 시인들이 많았다.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어느 노숙인의 시, 정리해고를 당해 길 위에서 천막투쟁을 하고있는 노동자의 시, 우리 어머니 일기장 속에 담겨 있는 청년 시절에 꾹꾹 눌러쓴 시 등.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몇 글자의 시 속에 담아 한 시대를 고이 간직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의 소통로로 활용하기도 했다. 시는 그들의 순간순간(삶)을 더욱 풍성하게 했고, 그들의 삶은 시를 더욱 아름답고 의미있게 수식하고 있었다.
<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는 시가 바로 ‘삶’이라는 내 인식의 변화 가운데 (아마도 실제 만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시를 제외한다면) 가장 중요한 책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경험은 존재론과, 실존주의, 인식론과 같은 철학이 시를 통하여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적으로 접하고 경험하게 되는 계기였다. 더 일상적으로는 불안의 문제와 외로움의 문제, 사랑과 연애의 관계들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실제적 실천이 겹쳐지면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결국 시는 삶 가운데서 스며 나오는 것이고, 삶의 문제란 지극히 개인적인 외로움과 소소해 보이는 고민의 점들이 이어진 끝모를 일직선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책에서는 시의 세계란 '다시 만들어진 현실'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결국 철학의 인식론과 연결되는데 모든 인간에게 '경험'이라는 주관적인 현실은 결국 '해석'이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사 같은 공간, 같은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해석'의 차이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각자가 각각 다른 실존 속에 놓이며, 다르게 삶을 인식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다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과정으로 인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더욱 특별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야만 하누 우리는 결국 자신의 세상 속에서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외롭다.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삶 속에서 무엇이 우리를 연결시켜 줄까. 바로 저자는 시가 우리의 삶을 더욱 크게 확장시켜 주고, 이웃과 소통시켜줄 놀라운 교통수단이라고 말한다. 이는 각자의 정서가 담겨 있는 세상을 외부적으로 점점 더 넓혀나갈 때는 또 다른 생명, 또 다른 문화,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하게 되며, 반대로 내부적으로 넓혀 나갈 때는, 존재의 깊은 세계 속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와 일상성에 파묻혀 버린 이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눈이 내리는 밤'이 어둠 속에서 내리는 빛의 향연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이토록 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만들어진 현실’에 대한 인식이 가능케 한다. 시를 통해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되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나의 삶을 구성하는 피폐하고 우울한 겉껍질과 같은 굴레들도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능력, 보이는 것에 곧이곧대로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머뭇거림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펜데믹의 시대를 지나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이전의 세대에는 경험해 본적 없는 새로운 발걸음을 떼야할 시점 앞에 서 있다. 조작된 욕망과 조장된 불안은 실상 이 세계를 움직이는 주요한 동력이다. 이는 필요 없는 것을 욕망하게끔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매스미디어와 SNS에 둘러싸여 우리 자신의 삶을 지켜내야 하는 싸움이며, 그동안 방역조치들로 단절되었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또 다를 엑소더스가 될 것이다.
이 막막한 광야에서 여전히 필요한 것이 시 한 편이다. 책에서 하르트만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구하지 않은 행복’(199p)을 언급한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현대인에게는 구하지 않은 행복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삶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들 즉, 물, 공기, 선함, 의, 배려, 등을 우리는 욕망하지 않지만 그 구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삶은 계속된다.
시는 바로 구하지 않은 행복을 끊임없이 발견하며 이 망가진 세계가 주는 얼룩감을 벗어버릴 수 있게끔 하는 삶의 원천이 된다. 문득 자신에겐 시밖에 없다고 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관택 (라오스평화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