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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5-09 00:28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글쓴이 : dangdang
조회 : 9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467 [109]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두란노출판사

 

때가 되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은 언제가 맞이할 죽음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각자가 맞이할 죽음의 때는 서로 다르고, 그 누구도 그때를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죽음은 때로 우리에게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죽음이 그만큼 우리에게 실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에 대해 늘 갑작스럽고, 두렵고, 슬프게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책 ‘죽음에 관하여’는 저자인 팀 켈러 목사가 자신의 처제의 장례식에서 전한 설교를 기반으로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의학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시대를 살던 과거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 사람들의 평균 기대 수명은 40세 전후였다. 부모를 여읜 자녀, 자녀를 잃은 부모 혹은 가까운 친척 및 친구들의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늘 염두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면서 의학과 의료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평균 기대 수명은 80세 전후가 되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병원 혹은 호스피스와 같은 시설에서 사회 및 가족들로부터 거리가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는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하는 일이 흔해졌다. 현대인들이 죽음에 대해 깊게 실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팀 켈러는 “현대 의학의 축복이 되려 독이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한 현대 의학을 독이라고 칭하는 팀 켈러의 표현이 다소 거칠어 어쩌면 읽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의학의 도움으로 연장된 수명을 갖게 된 현대인들이 죽음 이후를 염두하지 않는 현세의 행복에만 집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세주의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삶의 허무감을 느끼게 하며 죽음 이후의 세계와 인간의 죄성과 죄의식, 죄책감에 대해 부정하게 하고 기존의 종교를 도덕과 윤리로 대체했다. 

 

그러나 팀 켈러에 따르면 공공담론에서 종교적 언어인 ‘죄’와 ‘죄책’을 지웠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에서 인간의 죄성과 죄의식은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독일어에서는 죄책감을 “운베하겐 (unbehagen)”이라 하는데 이는 “불편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상태’, ‘더 나은 삶’, ‘더 나은 가치와 의미’를 끊임없이 갈망하게 한다. 특히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운베하겐이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일, 사랑한다는 말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던 일,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거나, 사과를 받아 주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남의 호의를 무시했던 일은 죽음을 앞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후회와 죄책감이다. 인간이 죽음 앞에서 느끼는 죄책감에 대해 현대 문화, 도덕과 윤리는 해결할 방법이 없지만, 기독교 신앙은 방법을 제시한다. 

 

과거 창과 검을 들고 싸우던 전쟁에는 ‘대리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각 진영의 대표들이 나와 싸우는 것으로 그 싸움의 승패를 통해 그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가 그렇다. 두 국가의 군대가 서로 피를 튀기며 싸우지 않아도, 대리전을 통해 승패를 결정하였다. 팀 켈러에 따르면 예수가 이 땅에서 한 것이 대리전이었다. 예수는 인류의 원수인 죄와 사망에 맞서 싸웠다. 다윗과 예수의 차이가 있다면,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투에 목숨을 걸었지만, 예수는 죄와의 전투를 위해 그의 목숨을 도리어 버리면서 인류의 원수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가 치뤄야 할 죗값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수가 대신하여 치뤄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망에 매여있지 않고 다시 사셨다. 

 

사실, 기독교 외에도 죽음과 내세를 말하는 종교들은 있다. 대체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영원을 위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닥쳐올 때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운베하겐, 즉 과거의 일에 대한 후회 및 죄책감을 느낀다. 도덕과 윤리 및 기독교 외의 종교들은 인간이 느끼는 죄책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모든 죄성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방법을 뚜렷이 제시한다. 그것은 예수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와 싸웠으며 죽음을 이겨냈다는 것을 믿고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평소 죽음과 가깝지 않던 우리에게 가까운 이들의 사망 소식은 갑작스럽고, 두렵고, 슬픈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반드시 언젠가 한번은 맞닥뜨려야할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슬프지만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였고 승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민학기 (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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