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에너지, 실용주의》: 진정한 실용주의와 실용주의의 유용성
이창언(경주대 교수, 경주대 SDGs・ESG 연구소장)
실용주의는 학문적 의미로는 추상적·궁극적 원리의 권위에 반대하는 철학적 태도이며, 실천적 의미로는 어떤 생각이나 정책에서 유용성, 효율성, 실재성을 중요시하는 성향이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실용주의는 결코 궁극적인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이론적 시각조차 문제를 사고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실용주의자는 꿈속에서 활동하지 않으며 선지자나 공상가처럼 말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실용주의 철학자는, 철학이 자신을 순수이성의 탐구자로 간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식이 직업철학자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실용주의란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실용주의는 체계적인 세계관을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실용주의가 행동철학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궁극적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이 세속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실용주의가 ‘효용의 원칙’을 준수하고 ‘유용한 것이 진리’임을 명확히 제시하며 행위의 효과를 진리의 척도로 삼는다는 것은, 실용주의가 가치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제임스는 “실용주의가 경험의 기쁨만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좌절과 착오가 가져온 성장을 중시해야 하며,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전망과 발전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용주의는 이론의 도구성을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수단을 써서 편협한 효용을 채우려는 미봉책이나 투기주의가 아니라 행위의 정당성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이자 행동양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실용주의는 단지 유럽에서 전해진 전통철학의 비현실적인 책상물림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연구의 접점을 제시한 것일 뿐, 오로지 목적만을 추구하는 이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둘째, 실용주의는 개방적이고 인간중심적 사고를 한다. 실용주의는 절대자와 체계를 부정하고, 정밀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든 질문이나 문제를 열어놓고 대처하려는철학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 정합성이나 합리성보다는 예술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호소력 있는 것을 선호하고 도덕적 책임에 관하여 충동적, 강제적 의식을 인정한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인간의 운명을 인간 외적인 것, 예컨대 절대적 진리에 의존했는데 실용주의는 그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의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실용주의자들이 공유하는 교의를 확실하게 분별해내는 것은 실용주의자들 각각의 개인적 관심과 취향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이들이 행동주의적 언어를 원용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진리를 만든다는 신념이다.
실용주의 철학이 지닌 몇 가지 특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진리의 변화 가능성이다. 둘째, 경험의 중요성이다. 셋째, 지행합일의 실천성이다. 넷째, 지식의 실용성이다. 다섯째, 지식의 개방성이다. 실용주의의 이러한 개방성은, 과학과 종교, 과학과 상식, 과학과 가치 등의 양립 가능성을 인정하고, 생활양식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게 한다. 우연성을 강조하는 열린 세계관, 상대주의적 세계관은 다양한 사회이론들과 접목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실용주의는 흔히 ‘도구주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실용주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용적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나 행동양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적 삶에서 한국인은 법질서의 절대적 준수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두드러진다. “법이니까 지켜야한다.”는 원칙적 태도보다는 현실적 이득이나 유·불리를 따져가며 준수 여부를 결정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에 강한 성향도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 법규와 같은 원칙을 어기는 일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태도를 실용주의라고 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실천적 유용성을 하나의 가치로 여기는 실용주의와는 좀 다른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도구’ 차원의 이념 또는 행동양식으로서의 실용주의라고 볼 수 있다.
실용주의가 역동적 한국사회의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이념적으로 단극적 구조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기회주의 또는 상업주의적 사상으로 치부되어 도외시된 실용주의 연구의 지평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한국의 근현대 사상에서 개인주의적 실리가 아닌 공동체적 실용주의(공공성, 거버넌스)의 요소를 발굴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의 실용주의로부터 시장실용주의와 공공성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적 국가운영(국정, 지방행정)을 위한 민주적 리더십과 거버넌스 시스템 구축의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실용주의의 재정립을 통해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 해소, 시민성의 회복, 민주주의(담론·참여·다원민주주의, 행정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제도화)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재해석된 실용주의는 실제적인 문화적, 제도적 혁신, 즉, 새로운 사회계약인 공동책임의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한국인의 에너지, 실용주의》는 근현대 한국사회에서 한국인들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언제,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생겨난 것이며, 또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적응하며 실용적 이익을 추구해왔으며, 이 태도가 한국인의 역동성을 어떻게 표출하게 되었는지를 밝혀내고자 했다. 이 책은 한국의 근대 100년의 역동성이라는 맥락에서 실용주의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기존의 실용주의자들이 천명한 방법, 실용주의의 특징, 한국에서 실용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실용주의의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한국인의 에너지, 실용주의 현세주의에서 실리주의로
저자 이창언|피어나 |2020.09.30
ISBN 9788998408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