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항상 개혁되야 한다
<복음과 개혁(루터의 정치윤리)> 이성림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2011
- 개혁되지 않는 개신교
여기 저기서 교회에 대한 걱정과 우려섞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많은 이들이 질문한다. “과연 여전히, 교회에 소망이 있을까?” “YES!!”라고 말하고 싶지만, 작금의 교회 상황은 대답을 꺼리게 만든다. 오늘날 교회는 경직되고, 수직적이다. 세상과 소통할줄 모르고, 자기도취에 빠져있다. 교회 세습과 사유화, 양적 성장에 대한 신화와 물량화, 각종 비리까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개신교회는 구체제에 대한 반동과 개혁으로부터 출발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성은, 이전에 정당화되던 캐캐묵은 관습을 뛰어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신교(개신교)는 세월을 거치면서 구교화되었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나갈 탄력과 유연성을 잃어버린 듯 하다. 구교의 타락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변화의 싸앗이 그 안에서 자라났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의 개혁은 시대적인 요청이며, 우리가 부딪쳐야할 신앙적 과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르틴 루터가 추구했던 개신교 정신과 종교개혁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원천이 될 것이다. 종교개혁이 어떤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서 발현되었으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밝히는 것은,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교회를 해석하는 눈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성림 교수(감신대)가 쓴, <복음과 개혁>은 루터의 정치윤리라는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신학적 개념을 주제와 에피소드 중심으로 잘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여전히 복음을 통해, 교회가 새로워지기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시길 소망해본다.
- 세속의 영성화
보통 세속화를 이야기하면, 일반적인 신앙인들은 거부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성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영역으로, 세속적인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속화에 대한 기획은 루터로부터 출발한다. 루터가 말한 세속화는 하나님의(of God), 하나님에 의한(by God),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for God) 세속화이다.
루터 이전의 중세 교회는 성(聖)과 속(俗)을 분리시키고, 이것을 권력 이데올로기로 사용하였다. 성과 속은 연결될 수 없고, 맞닿을 수 있는 접점이 없는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성이 분리된 속은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속 사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절대로 더럽거나 포기해야 할 영역이 아닌 것이다. 성스러운 예수 그리스도가 더러운 마구간에 임한 크리스마스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종교개혁을 추진한 루터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세속을 성스러운 것들로 가득 채울 계획을 하고 있었다. 목적(telos)을 상실한 세상으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세속에 대한 영성화’가 루터의 기획이라는 것이다.
- 보이지 않는 하나님
루터에게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상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Deus absconditus)’ 혹은, ‘숨어계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이다. 사람은 적극적인 노력이나, 능동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하나님은 늘 숨어계신다. 그러니 주도권은 늘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신앙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비(非)쟁취함으로써 얻게된다. 설명이 거창했지만, 이것은 늘상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은혜” 자격없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십자가와 고난(십자가 신학)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어느새, 은혜에 대한 강조보다는 결과와 업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난이 아니라, 영광을 추구하는 신앙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 신앙인의 자유
그리스도인은 어느 것에도 복종당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주인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모두에게 봉사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사랑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이런 정신은 구체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루터의 인간론은 철저한 죄인으로 존재한다. 그 무엇으로도 인간은 선해질 수 없다. 오직 한가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안에서만 인간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는 탄식에서, ‘나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고백을 한 것처럼, 루터에게 절망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밖에도, 다 설명하지 못한 중요한 개념들이 책속에 잘 녹아져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화석화된 종교에 역동적인 신앙의 호흡을 불어넣었다. 이로부터, 500년이 흘렀다. 어느새, 교회는 또다시 낡고, 빛바랜 영광에 머물러 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슬로건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억하고, 교회를 새롭게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신동훈 목사 (마포 꿈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