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의 몰락
<진보의 몰락>, 크리스 헤지스(노정태 옮김), 프런티어, 2013.
오늘 소개하는 책은 절판되었다. 따라서 보고 싶다면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을 기웃거려야 한다. 하지만 책 내용은 절판은커녕 이 시대 반드시 곱씹어 보아야 할 중요한 부분을 담고 있다. 지난 대선을 전후하여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많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장로교 목사 아들로 본인 역시 하버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책 곳곳에 신학적 언급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관련해 미국 기독교 우파의 실체를 폭로한 <지상의 천국> 역시 감신 신학대학원 출신 정연복 번역으로 시중에 나와 있다. 크리스 헤지스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뉴욕타임스」 종군기자로 중앙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와 발칸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을 취재했다. 2003년 5월, 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이라크 전쟁 비판 연설이 물의를 일으켰고, 「뉴욕타임스」는 그에 대해 경고 조치했다. 이에 환멸을 느낀 그는 신문사를 사직했다. 현재는 비영리 미디어센터인 네이션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언론계의 노암 촘스키로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 진보 언론인이다.
<진보의 몰락> 원제는 <DEATH OF THE LIBERAL CLASS>이다. 직역하자면 자유주의 계급의 죽음 혹은 몰락이 맞겠지만 번역자는 ‘liberal’을 진보로 옮겼다. 번역자의 말을 들어보자.
“1950년대 이전, 아직 radical한 세력이 남아 있을 때에는 libaral을 ‘자유주의’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진보주의’라고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넓은 의미에서의 진보주의 세력 중 현실적으로 남아 있는 이들이 그들 뿐이기 때문이다. 한때의 radical, 과거의 left(좌파)들은 모두 정치 무대 바깥으로 쫓겨나 버렸다” (9쪽)
크리스 헤지스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군기자로 전쟁터를 직접 목격하며 미국이 만들어낸 부조리와 폭력의 참상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테러와의 전쟁’ ‘지구적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구호 이면에는 영원한 전쟁 상태를 유지하며 자본주의적 확장을 꾀하고자 하는 파워 엘리트들의 의도가 있음을 간파했다.
“영원한 전쟁은 파워 엘리트들이 개혁을 질식시키고 불만을 잠재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 전시에는 더욱 엄격한 기밀 유지, 지속적인 경계와 의심이 요구된다. 전시 상태는 특히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불신과 공포를 자아내 입을 닫게 하거나 국가주의적 표어만 읊조리게 한다. 전쟁은 교육과 언론을 부패케 하고 수준을 떨어뜨리며, 경제를 파괴하고 여론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전쟁은 일종의 종교적인 열정으로 수행된다. (중략) 영원한 전쟁 상태에서 진보주의자들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47,8쪽)
문제는 거기에 진보 진영이 교묘하게 결탁함으로써 민중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 그 결과 진보 진영 자체의 자리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언론인의 소명을 다하고자 거대권력과 싸움을 시작했으며 이 책 역시 그 연장선에서 쓰였다. <진보의 몰락>은 진보 진영이 국가와 기업 권력에 어떻게 짓밟혀왔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이 어떻게 민중을 배반하고 권력과 손잡았는지를 추적한다.
“우리는 우리가 의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바로 질병이다” (알렉산드로 헤르젠, 32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 헤지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불의한 세계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용기로부터 시작한다.
“저항하는 행동은 도덕적인 행동이다. 양심적인 사람들, 실용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인 사람들이 있기에 저항할 수 있다. 그들의 저항이 드러나야 하는 것은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이다. (중략) 저항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죽음에 잠겨 있는 세계에서 개인의 신성함을 확인시켜준다. 저항은 궁극적인 신앙행위이며 영성의 가장 고귀한 형태다” (347,8)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