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명한 사람이 그리운 시절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고운기 시집, 창작과비평사, 2001)
4월에 가장 유명한 시는 아무래도 T.S 엘리엇의 <황무지>가 아닐까 합니다. 이 시는 영원한 생명은 얻었으나 젊음은 구하지 못한 한 무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무녀는 영원한 삶을 구한 덕에 새장 속에 갇혀 영원히 늙어가는 형벌을 받습니다.
그녀의 독백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이 무녀에게는 대지가 생동하는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입니다. 온 세상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젊음을 찾는 시기에 홀로 영원히 늙어가는 나락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삶을 구했던 이 무녀처럼, 축복인 줄 알고 구했으나 그것이 되려 생을 옭아매는 저주요, 형벌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욕심을 쫓다 죄의 올무에 빠지는 사람은 허다합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예수의 이 말씀은 ‘내가 구하는 것’과 ‘내게 좋은 것’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위험한 것을 달라고 때쓸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겪는 많은 위기와 고통은 잘못된 것, 지나친 것을 구한 결과입니다. 생태, 환경, 전쟁, 정치, 사회 위기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의외로 심플합니다. 좋은 것에서는 사람 냄새가 납니다. 복음이 율법주의와 다른 지점도 사람 냄새입니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오늘은 사람 냄새 진하게 배어나는 시집을 한 권 소개할까 합니다. 고운기 시인의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시인의 자서전 같은 이 시집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집니다. 소소한 삶을 깊이 관찰하고, 누군가의 얼굴을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중에서도 <약간의 오버>라는 시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過猶不及(과유불급)에 너무 훈련받아왔다
지나친 것은 나쁘다는 교시가 분명 너무 강했다
過恭非禮(과공비례)라 하면서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명색 한가락 한다는 사람들을 보라, 사실 지나치면서도
언제나 과묵한 척 모자란 척 숨기고 있었다, 문제는 숨기는 것이다
<내 마음의 풍금>을 만든 이영재 감독은 석사과정 때 동급생이었는데, 극예술연구회 배우였던 그는 말이나 몸짓이 늘 오버 액션이었다, 연극에서 배운 습관이었으리라, 입을 크게 벌리다 못해 입술마저 일그러지는 그러면서 손짓에 발짓까지 섞어 말하는 그 앞에 있노라면 연기를 보는 듯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
숨기는 게 없었다
오버 액션을 하는 사람은 정직하다
그 몸짓이 대개 그의 전부이다
마광수 교수도 지나쳤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전부이다
전부를 보여주는 사람 앞에서 나는 편안하다
술을 조금 지나치게 먹는 사람이나, 지나치게 먹고 조금 지나치게 말이 많아지거나
지나치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흥에 겨워 옆 사람을 붙들고
춤을 추는 사람이나 그렇게 약간 오버하는 사람이
나는 좋다, 그런 오버에 대체로 거짓은 한자리하지 못하므로
투명하다, 투명하다 못해
뒤통수를 맞거나 살근거리며 사람을 홀리는 데 넘어가거나
그런데도 어느 곱디고운 손이 있어 뽀얗게 감싸준다는
옛 이야기 같은 사람을 나는 오래도 믿어왔다.
겉과 속이 다르고, 약속을 쉽게 뒤집는 사람들 때문에 잔인한 4월. 약간 오버하는 듯 하지만 투명하고 맑은 그런 사람이 그립습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