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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22-04-17 02:58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343 [119]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 이동희 저, 넥서스Cross, 2015

 

이동희 박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많은 저서를 남긴 탁월한 철학자이면서 신학적 조예가 깊은 학자였다. 2017년 국제성서박물관에서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전시회를 할 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 온 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겪으면서 교회도 새롭게 변혁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책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혁(革)은 ‘가죽’인데, 똑같이 가죽을 의미하는 피(皮)와 큰 차이가 있다. 피(皮)는 자연 그대로의 가죽이라면 온갖 수고와 노력을 통해 다듬고 가공한 것을 혁(革)이라고 한다. 피(皮)가 혁(革)이 되기 위해서는 가죽을 벗기고 기름기를 제거한 다음 무두질을 하여 팽팽하게 펴서 말려야 한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이어령 교수는 “개혁은 가죽을 다듬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 소개한 20인의 종교개혁가들은 당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맞선 용기와 결단으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강렬하게 비난한 대상은 그 당시 교회 사제인 바래새파가 아니었던가... 종교는 끊임없이 자기 개혁을 하지 않으면 권력화되고 부패한다.”고 말한다.

 

로마 천주교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종교개혁의 불길이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을 중심으로 한 외곽 지역에서 일어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저자도 이 점을 지적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쓴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주장을 언급한다.

 

“알프스 이남 지역, 다시 말해 로마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그 지역이 부패할 대로 부패해 개혁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 당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로마 가톨릭교회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개혁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의 영성이 무뎌져 버린 것은 아닐까 염려해 본다. 최근 2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교회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선교에 대해 새로운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존 위클리프에서 존 로크에 이르는 종교개혁 사상가 20명의 인물을 종교개혁의 불길을 따라 차례로 정리하여 소개하면서 그들의 시대적 상황과 신학적 사상, 그리고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그들의 실천적인 삶을 소개하고 있다.

 

영국의 선구적 종교개혁가인 존 위클리프는 두 명이 교황이 전쟁을 벌이는 시기에 교황제도에 반대한 <교황권론>(1379)이란 책을 쓰고, 교회 대분열은 로마 교회의 타락을 보여주는 확증으로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묘사했다. 그는 부패와 탐욕에 물든 로마 교회는 소유를 포기하고 복음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의 진정한 중심은 ‘사람’이나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강조한 위클리프는 성서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불가타 라틴어 성경을 관용적이고 일상적인 영어로 번역하였다.

 

유럽 대륙에서 영국의 존 위클리프 사상을 추종한 사람은 체코의 얀 후스였다. 후스는 체코어로 ‘거위’라는 뜻이다. 후스는 교회가 타락을 청산하고 초기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후스는 1415년 위클리프의 사상을 설교한 죄로 로마 교황청에 의해 소환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대에 오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거위 한 마리를 태우는 것이지만, 한 세기가 지나면 굽지도 끓이지도 못할 백조를 갖게 될 것이오.”

 

후스가 순교하며 예언한 백조가 한 세기 만에 등장하였는데, 1517년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린 독일의 마르틴 루터였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마르틴 루터를 ‘백조’로 여긴다. 국제성서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을 통해 백조가 그려진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우표를 구입하여 소개한 바 있다.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문 교회에 문에 붙인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에 힘입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루터가 1520년에 출판한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로니아 유폐>, <그리스도인의 자유> 등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오직 성서로”라는 그의 종교개혁 사상을 잘 보여준다. 마르틴 루터 보름스 국회에 소환을 받고 파문된 후 바르트부르크 성에 피신하여 있는 동안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그 외 <우신예산>으로 부패한 교회를 비판한 에라스무스, 교회의 전통보다 성서의 권위를 주장한 츠빙글리,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이끈 요한 칼빈, 급진적 혁명주의자 토마스 뮌처,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다가 화형당한 윌리엄 틴들, 죽음의 순간에 오른손을 화형 시킨 토머스 크랜머, 갤리선의 노예에서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이끈 존 녹스, 종교개혁을 위해 왕과 맞선 테오도르 베자, 청교도의 아버지 존 후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의 역사를 시작한 윌리엄 브래드포드, <실락원>을 쓴 존 밀턴, <천로역정>을 쓴 존 버니언 등을 유려한 필체로 소개하고 있다.

 

윌리엄 틴들은 당시 성직자들조차 성서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이 내 생명을 지켜 주시면 몇 년 안에 밭고랑 가는 소년을 당신보다 성서를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서를 번역하여 보급하다가 화형을 당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주여, 잉글랜드 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가 순교한 후 75년만인 1611년 <킹 제임스 성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인물로 소개된 존 로크는 근대 경험론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데 당시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정부와 종교인들의 종교적 편협함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비판을 하면서, 종교의 자유와 관용에 대해 설파하였다. 그가 1689년에 출간한 <관용에 관한 편지> 서두에 쓴 글을 보면 오늘날 교회정치의 현실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아무리 모두가 정통 신앙을 크게 자랑한다 해도 그들이 내세우는 이런저런 주장들은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의 표식이 아니라 인간이 권력과 지배를 둘러싸고 경쟁함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임봉대 목사 (에벤에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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