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보그가 되다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저, 사계절
김초엽이라는 저자의 이름에, 나는 당연히 이것이 SF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김초엽은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고 현재 한국에서 SF 장르 소설을 가장 잘 쓰기로 정평이 나있는 작가가 아니던가.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책의 제목도 나의 오해를 부추겼다.
책을 펼치고 공동저자인 김원영 변호사가 쓴 ‘들어가며’를 읽었을 때, 그제서야 내가 단단히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SF도 소설도 아닌 이 책은, 각각 청각 장애와 지체 장애를 가진 김초엽과 김원영이 장애와 과학기술이 조우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바를 바탕으로 담론을 전개한 논픽션 사회과학서였다. 여기서 ‘사이보그’란 휠체어나 보청기 등의 ‘기계’를 사용하는 ‘장애인’을 뜻하는 상징적 단어다.
김원영은 말한다. “인간인지 아닌지를 매일 아침 고민하지는 않지만 ‘온전한 인간’인지 아닌지, ‘동등한 인간’인지 아닌지를 고민한 시간은 제법 길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우리는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의 경험과 자기 정체성을 반추해보면서, 장애에 관한 주된 과학기술 담론이 얼마간 어떤 존재들을 더 소외시키거나 그저 소비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보청기와 인공 와우를 통해 처음으로 소리를 접하는 농인들의 모습, 매끈한 디자인의 의족을 신고 달리는 운동선수, 계단을 오르내리는 휠체어...미디어에서 이러한 장면은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기술’ 등의 문구를 달고 소개된다. 나는 이런 장면을 보며 ‘기술의 발전이 특히 장애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기술은 계속 진보하고 있으며 지금 장애로 여겨지는 것이 아무런 불편이 되지 않는 미래가 곧 올 것이라는 믿음도 생겨났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기술과의 신체의 결합이 기대만큼 매끄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과학과 기술영역에 깔린 그리고 나에게도 깊게 자리 잡고 있던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해 깨닫게 된다. 장애가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장애를 치료와 교정의 대상으로 볼 뿐이다. 김초엽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손상’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이라는 것이다. 치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관점은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지워버린다.”(1부 3장 「장애와 기술, 약속과 현실사이」 중)
이 책은 총 3부에 걸쳐 전개되고 (1부 우리는 사이보그인가, 2부 돌봄과 수선의 상상력, 3부 연립과 환대의 미래론) 마지막에는 두 저자의 대담이 실려 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인식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책임 있는 이웃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가 꼭 한 번씩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디쯤 와 있을까. 장애인들의 ‘이동권’이라는 당연한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시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등의 언사로 갈등을 조장하는 어느 정치인의 말이 기삿거리가 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존엄성을 누리며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함께 살아갈 방법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정유은 목사 (꿈이있는교회, 라오스평화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