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게시판
바이블25
크리스천라이프
커뮤니티
갤러리
성경/찬송가
지역정보
로중
전도
뉴스
QT
전도모음
Cristian YouTube
     
커뮤니티
칼럼
명언묵상이미지
하늘양식
오늘의책
십자가
명상
영상
설교
말씀
독자편지
독자편지 [121]
 
 
 
     
 
 
 
작성일 : 22-04-12 22:28
   
​밤이 선생?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8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321 [126]


 

밤이 선생?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2013

 

아주 오래 전에 이 책을 구입했다. ‘황현산 산문집’으로, 당시엔 저자가 팬덤이 형성된 필자인지 전혀 모를 때였다. 단지 “밤이 선생이다” 라는 책 제목의 의미, 그리고 제목이 겉 표지 그림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구미가 당기지 않는 제목과 표지 그림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해서 집어 들었다. 

 

겉표지 그림 먼저 확인했다. 1971년 생 독일 작가 팀 아이텔의 <옵서버> 라는 작품이었다. 작품 속엔 머리 가운데가 벗어지고 흰 둘레 머리를 가진 노인이 밤을 상징하는 어둠 속에서 오른손으로 펜을 쥐고 흰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밤이 선생이다>는 제목과 연결지어 보면 밤이 가르쳐 주는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목차를 열고 책 제목과 동일한 제목을 가진 산문을 찾기 시작했다. 시집이나 산문집 같은 흔히 책 제목을 정할 때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내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목차엔 <밤이 선생이다>는 제목을 가진 글은 없었다. 결국 이 책을 다 읽어야 왜 밤이 선생인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제목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책이 손아귀에 들어오면 책 읽기를 미루는 습성이 발동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놓고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저자에 대한 한 인사의 추모사를 읽으면서 고인이 되었음을 알았다. 저자에게 큰 결례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선생께 숙제를 하지 못한 학생 같은 죄송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다시, 왜 밤이 선생인가 라는 제목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불문학자요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주로 신문들에 실었던 칼럼들을 모아서 펴낸 것으로, 책을 펴내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모두 81편의 산문이 실려 있는데 그 모든 글들 속에 이같은 그리움과 사랑과 그래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흐르고 있다.  

 

더군다나 번역가로서 다듬은 언어 연금술이 산문들 속에서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거린다. 산문들의 소재들은 대부분 빛바랜 뉴스거리들이었지만 이것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성찰과 기록들은 시사적 한계를 넘는 금언들의 퍼레이드였다. 

 

<과거도 착취 당한다>라는 첫 번째 글 말미에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12) 선생은 이 두터운 감수성을 가지고 시공간을 초월할 만한 교훈들을 건네고 있다. 

 

선생은 목포의 어릴 적 삼학도가 사라지고 오늘날의 삼학도로 변모한 현실을 보면서 탄식한다. “생각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소비하는 일에만 매달릴 때 그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삼학도의 비극은 그렇게 계속된다.”(57) 또한 한용운의 심우장, 염상섭, 현진건, 이태준의 수연 산방 같은 역사적 공간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말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사람이 이 땅에서 반만년을 살았다 한들,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 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나 같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59)

 

선생은 60-70년대에 청계천 대로 변에 즐비하던 헌책방들을 기억해 내면서 더 이상 헌 책이 통용되지 않는 현 상황을 가지고 교육 제도의 허점을 진단하며 젊은 세대의 아픔에 공감한다.  “한 번 사라진 책은 영원히 사라지는 이 사정이 한 번 낙오하면 영원히 패배하는 우리 교육 제도의 원리와 같다고 해야 할까.” (218)  

 

81편이나 되는 산문들 중에 드디어 책 제목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선생은 70년대 군대 시절 티비에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초연 장면을 보여줄 때 자막으로 흐르던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는 가사 한 구절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이 가사가 아마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한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돌려다오.”를 참조한 것으로 추측했다. 

 

선생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고 믿었으며...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결국 그 횡포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는 일이며, ‘어둠의 입’이 해 줄 수 있는 말이란 현실에서 통용되는 말의 권력을 넘어선 역사의 말이자 미래의 말이다.”(221).

 

선생은 흔히 빛과 어둠, 선과 악을 낮과 밤으로 비유하는 도식을 버리고 오히려 밤은 낮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생각과 성찰, 곧 진실을 보게 하고, 시인의 상상의 언어 곧 미래의 희망의 언어들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밤은 선생이라는 것이다. 선생의 산문은 바로 이같은 생각과 성찰, 미래에 대한 희망의 언어, 곧 선생이 되는 밤의 언어들이다. 표지 그림인 팀 아이텔의 <옵서버>에 나오는 인물은 곧 밤이다. 낮에 일어났던 그 많은 사건이나 사실들을  다시 반추하면서 그 일들 속에 숨겨진 진실을 정리하고 성찰하게 하는 밤이 선생이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이런 밤의 선생이 필요하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

 


 
   
 

 
Copyright(c) 2012 http://bible25.bible25.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