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코로나(Post-Corona) 전도?
(<다시 곱씹어 보는 영성>, 일레인 하쓰, 임찬순 역, 신앙과지성자, 2022)
코로나19로 벌써 교회의 문을 닫다 열다 삼 년째입니다. 전도의 문은 더욱 굳게 닫혔습니다. 일레인 하쓰는 코로나19 이전에 벌써 미국교회가 쇠퇴하는 심각성을 갖고 이 책의 소재를 삼습니다.(3) 정희수 감독은 추천사에서 그의 관심사는 모름지기 복음의 실천적 삶, 생명운동이 전도학이라는 신념을 가졌다고 소개합니다.(8) 그 새로운 방식의 전도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는 기독교 영성가들에서 찾은 관상적인 전도방식이라고 말합니다. 관상적인 삶의 방식인 정화, 조명, 일치의 과정을 개인의 영성형성에서 교회공동체로 적용합니다.
정화(Purgation, 돌이킴), 영성가들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어둠의 밤”을 경험합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주도하는 상실 과정입니다. 이때에 세상과 육체와 마귀의 영향력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납니다. 혼돈스러운 애착(attachment)에서 초연(detachment)해지는 통과의례며, 정화와 자기 비움(kenosis)의 과정입니다.(36) 코로나 팬더믹은 우리가 경험하는 어두운 밤입니다. 혼돈과 착각의 시간입니다. 지금은 혼돈과 공허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생명의 씨알을 품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해야 할 소명, 곧 복음 전도를 위한 관상적인 비전을 발견해야 할 시간입니다.(49)
조명(Illumination, 일깨움), 14세가 유럽 전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놀리치의 줄리안은 온 가족을 잃습니다. 세 번의 임사체험과 열다섯 개의 환시를 본 그녀는 온 우주가 사랑이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확신을 정초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슬픔, 불안, 죽음 가운데서 줄리안의 커튼이 쳐진 기도방의 창문 앞에서 가야 할 길을 발견합니다. 거기서 성결과 치유와 용서와 평화를 찾습니다.(55) 19세기 성결운동의 어머니였던 푀비 팔머(Phoebe Palmer)와 스탈린 치하 소련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20년을 보냈던 러시아 정교회의 수도사 알세니(Alseny)의 삶도 어두운 밤을 뚫고 빛을 발하는 거룩한 전도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82,89)
일치(Union, 하나됨), 줄리안, 팔머, 알세니가 “비난 없이 연민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두려움 대신 사랑으로, 심판 대신 소망으로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165) 줄리안이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언급하고, 팔머가 “경건의 길은 포기하는 것이다”라 말하며, 알세니가 “사제의 길은 비움의 길이다.”라고(185) 말한 그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삶이 오롯이 관상적인 태도였음을 실감합니다. 초기 감리교 모임이 수도원적인 공동체였음을 떠올립니다.(187) 침묵과 고독으로 내면 깊은 곳에서 만난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이 곧 그들의 전도였음을 확인합니다.
다시 곱씹어 보는 영성(The Mystic Way of Evangelism), 관상적인 방식으로서의 전도를 대안으로 새 날을 내다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고전1:21), 무지의 구름 속에서 찾는 그 길(apophatic way)을 위해 관상기도에로의 부르심을 확신합니다. 말씀에서 솟아나는 기도로써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와 동방 정교회 전통에서 우러나온 예수기도(Jesus Prayer), 그리고 <무지의 구름>에서 빚어낸 센터링 침묵기도(Centering Prayer)를 통해, 쉼에서 앎을 경험하며 삶으로써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 전도의 문을 열어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승영 목사 (한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