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2018
어지러운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나고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갈렸기 때문에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희비는 엇갈렸다. 대통령 선거는 법과 원칙에 의해 공정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녕했을까?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함께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었다.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안녕하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역사적 사례를 찾아가며 트럼프 정부가 어떻게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지에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 democracy의 어원은 demos(민중)와 kratos(지배)의 합성어로, 즉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국가인가?
대한민국 헌법
*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의 제1조 1항과 2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이념을 기초로 한 국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좌초한 역사를 갖고 있다. 독재자로 인한 전제주의 폭력 아래에서 권력의 주체자가 되어야 할 국민은 억압과 통제를 받아야했고 국민의 권력은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독재자를 떠올리면 전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아돌프 히틀러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지도자로 뽑혔다는 점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진 일은 히틀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루시오 쿠티에레스 등 여러 지도자들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민주주의 제도를 허물어뜨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제적 괴물을 걸러내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에서는 예일 대학 교수인 린츠의 <민주주의 정권의 몰락>을 인용하면서 반민주적 정치인을 가려내는 ‘리트머스 테스트’를 4가지를 언급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
2)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
3)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
4)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
대중선동가는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며 위의 4가지 방법을 동원해 대중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때 기성 정치인들은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그들을 이용하기 보다 걸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경우 정당의 원로들은 이런 역할을 잘 감당했다고 한다. 때로는 자기 당의 후보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상대방과 연정을 펼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의 징후 속에 벨기에와 핀란드에서는 극우파의 조짐에 정치 활동을 금지시켜 파시즘의 열풍을 막기도 했다. 결국 전제주의 괴물의 탄생은 기성 정치인들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문법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법이란 해석의 범위가 넓고 모호해서 상대방을 부정하고 적으로 간주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민주주의 방패가 아닌 전제주의의 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저자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무위의 규범 두 가지를 언급하는데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자기 독선에 빠지지 않을 절제를 말한다. 참 어려운 말이지만 ‘민주주의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절반 이상의 경우에서 옳다는 생각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다.(E. B. 화이트)’
민주주의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가 인간에 대한 예의와 평등, 자유,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한다는 신뢰로부터 시작된다. 권력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거짓과 술수로 상호비난을 이어간 대선의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결국 민주주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인 상호신뢰가 무너진 결과가 아닐까?
이원영 목사(예장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