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가는 사람이 있어 덜 힘들고 덜 외롭다.
<꽃은 많을수록 좋다>, 김중미, 창비, 2016
“우리 공동체는 희한하게 뛰어나게 잘난 사람이 없어요. 다 약하고 모자라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는 것 같아요.”(138)
요새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인클로저’라는 낯선 외래어가 눈에 자주 밟혔다. “대지는 어머니의 몸”, “강물은 조상들의 피” 등의 원주민들의 고백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용어였다. 인클로저, 그것은 기본적으로 불평등과 관련이 있다. 특히, 토지의 개인사유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오늘날 그 속도와 집중도가 높아졌음에 대한 고발이다. 비근한 예로, 아무렇게나 버려진 땅, ‘데드 스페이스’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곤 했는데, 이제는 도심 내에서 그런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주변을 돌아보라. 돈을 지불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공간들투성이다. 지나친 논리비약이지만, 공유지의 부재는 곧 지역기반의 공동체들의 붕괴로 귀결되지 않을까.
<괭이부리말 아이들>, <모두 깜언>, <곁에 있다는 것> 등을 저술한 김중미의 산문집 <꽃은 많을수록 좋다>에는 ‘기찻길옆 작은학교’에서 벌어진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저자 김중미는 가톨릭 기초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진행했다. 공부방의 탄생 배경은 그것이다. 그 공부방이 한때 저자 김중미 부부의 신혼집이었다고 하면 과연 믿을 사람이 있을까. 공공의 것을 사유화하는 시대, 자기만의 공간을 누군가에게 내어준다는 것이 새삼스럽기 그지없다.
‘기찻길옆 작은학교’는 인가 학교도 아니고, 대안학교도 아니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모여드는 공부방이다. 별 볼 일 없는 곳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기찻길옆 작은학교’라는 서정적인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10대 아동들의 요동치는 감성들을 오롯이 품을 수 있는 곳이다. 혈연관계가 없는, 이모와 삼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감정적 교류 및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까닭이다.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언론에서 떠드는 현재의 풍요와 장밋빛 미래가 자신에게도 똑같이 주어질 거라 믿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잔인하리만치 분명하게. 그러나 그것을 누리지 못하면 불행한가 하고 되물었다.”(32)
언젠가 저자는 창비 라디오 책다방에 이야기 손님으로 출연한 바 있다. 거기서 한 아이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 말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홈스쿨링으로 검정고시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다음과 같은 뉘앙스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입시경쟁으로 모순이 집약된 고등학교에 진학하라고. 공부방 이모나 선배나 참 단단한 인물들 같다. 가혹한 세상을 직면하라는 충언을 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도 정서적 연대와 지지로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준다는 점이 그러하다.
공부방의 존재의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보습학원처럼 성적을 끌어올려 맨 앞자리에 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그 줄에서 벗어날 용기를 북돋기 위함이라던가. 소소하게는, 함께 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돌아보고, 왜 그 길 위에 들어섰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의 걸음걸이에 내 걸음을 맞추기도 하고, 가던 길을 멈춰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는 것, 더 나아가 약한 이의 편을 드는 것, 그렇게 평화를 지켜나가는 공부방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작지 않았다.
“우리는 한 번도 완성된 적이 없는, 불완전하고 모자란 게 많은 어설픈 공동체다. 우리는 취약한 대로 힘없고 약한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과 손잡고 가는 공동체로 살아갈 작정이다.”(372)
그밖에 결핍에 대한 단상들, 공부방을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10대 아이들을 중심으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모 삼촌들의 이야기, 그 대안공동체 이야기가 참 아름답게 와닿았다. 희생과 책임을 권력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는 저자의 진솔한 고백도 좋았다. 저자는 불완전하고 어설프다고 했지만, 내겐 모범적인 공동체로만 보였다. 그와 그들의 세상살이가 참 부럽고도 존경스러웠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