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저자 박종호, 민음사
종교와 예술은 항상 함께 해 왔다. ‘천지를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과정이 예술창작의 원형이라 생각해보면, 또 형상대로 빚어져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예술이 왜 종교, 특히 기독교와 늘 항상 함께해 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수차례의 ‘성상파괴 운동’ 혹은 신상을 만들어 종교를 벗어난 예술의 사례가 생겨나면서 어떤 것이 진짜 영혼이 담긴 예술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누려야 하는지 잘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술과 예술의 주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굴지의 클래식 전문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 박종호씨의 서문을 빌자면, ‘예술가가 참 많은 나라’인데, 예술이라는 말이 흔해진 예술 평등시대인데, 과연 ‘예술적인 나라가 되었는’지 생각해 봄 직하다. 일정 수준의 예술 지식이 상식이 된 시대지만 정작 ‘예술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왜 사회에 필요한지, 우리가 그들의 어느 부분을 존경해야 하는지, 대체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13p) 잘 모르는 시대이기도 하다. 예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평론가와 미디어에서 훌륭하다고 하는 예술을 보며 어리둥절해 하기도 한다. 어떻게 예술을 듣고 보고 읽을 것인지 모르겠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 다년간의 풍월당 강의를 응집한 저서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는 고전이라 불리우는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예술작품을 풀어내어 “사람들의 얼어붙은 내면의 얼음을 깨는 도끼 같은 것”(-프란즈 카프카-, 15P)이 딱딱하게 굳은 영혼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데 도와주는 책이다.
먼저 저자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게 한다. 하필이면 춘삼월도, 여름도, 추수가 있는 가을도 아닌 겨울에 떠도는 나그네의 여정을 그린 노래 속에 담긴 춥고 가난하고 슬픈 사람들을 조명한다. 생각해보면 예술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춥고 가난하고 세상에서 소외받는 자들이다. ‘노트르 담 드 파리’의 장애인과 집시나 모세와 같은 추방자. 유대인들, 창녀들, 유색인종들, 자살한 자들, 사생아들…. 저자가 구분한 예술의 주인공을 묶은 차례를 보면 이상한 동질감을 느낀다. 성경, 특히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주신 자들이 꼭 그랬다. 예술가들도 그랬다. 슈베르트, 베토벤, 고흐, 살아생전에는 빈곤하고 추방당하고 쫓기던 자들이 숱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가장 잘 해석한 성악가로 정평이 난 크바스토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제 영상을 찾아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키가 134센티에 불과하고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어서 피아노 입시를 치르지 못해 법대로 입학해 성악과를 전과해야 만 했던 그의 ‘겨울 나그네’는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한 영혼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시를 읊고 있는 느낌이 든다.’(같은책 69p)
어쩌면 “어느 때까지이니까” 홀로 기도하는 다윗의 기도가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는 위대한 예술가는 목사와 같은 직업적 소명을 가진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성당의 성화나 스테인글라스 작품 하나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설교와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문맹율이 높았던 시기에 화가의 그림 한 점, 바흐의 음안 한 곡은 당시 가난한 성도들에게 한 편의 설교이자 기도였을 것이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마태 9:13)”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처럼 죄인들, 약자들, 소외자들, 가난하고 슬픈 자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예술이다. 끊임없이 예술이 반복해 온 주제다. 또한 성경 속 인물들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보듬어주신 이들이기도 하다. 심지어 많은 아침드라마의 주인공도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천대받으며 살거나 억울한 일을 겪는 자들의 극복 내용이 아니던가.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고매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예술작품들에 대한 호감도, 이해도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익히 이름을 들어봤던 오페라, 문학작품, 그림들이 다루고 있는 이런 주제에 대한 해설이 담긴 책을 읽으면서 꼭 인상 깊은 작품들은 찾아 들어보고, 읽어보기를 함께 권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작품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되기 시작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단락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개를 돌려 타인을 보라. 가난한 자, 불쌍한 자, 부당하게 무시당하고 불이익당하는 자들……. 이제 벙어리를 위하여 입을 열고 들리지 않는 자를 위하여 대신 들어보자. 그것이 진짜 예술의 태도다. 망설이지 말고 목청을 높이라.” (같은 책 272p)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던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라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기도이다. 나는 신을 믿는다.” 이 책의 해설을 따라 예술을 읽고 보고 듣다 보면 어느새 신과 영혼, 세상과 사람을 향한 책임감이 담긴 예술이 당신을 위해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창수 목사 (선한목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