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추고 사는 즐거움
<낮추고 사는 즐거움>, 조화순, 도솔출판사, 2005
많은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한다. 높은 자리가 주는 권력과 부를 가지고 누릴 수만 있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더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낮추고 사는 즐거움>의 저자 조화순 목사도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화순 목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는 사뭇 의아스러운 답변을 준다. 높은 곳이 주는 권력과 부가 당신이 하고 싶은 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從吾所好’(종오소호):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른다”는 뜻으로 이현주 목사가 조화순 목사의 고희를 축하하며 써준 글귀처럼, 이 책은 조화순 목사가 과거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 지금 하고 싶은 일,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8년간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헌신한 산업선교야말로 낮은 자리로 내려간 삶이었던 것이다. 처음 공장으로 가는 조화순 목사에게 조지 오글 목사는 “훈련받으러 들어가는 것이므로 노동자에게 배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거울로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목사에서 노동자로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회고한다.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노동자들이 당하는 모욕감과 수치심을 직접 경험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선교가 아니라, 노동자와 함께 일구어 나가는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산업선교는 노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판단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후일 조화순 목사가 하고 싶었던 일 역시 낮은 곳에 내려가 노동자와 함께 일구는 하나님 나라였다며, 그제서야 조지 오글 목사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높은 자리에 있는 몇몇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의 변화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조화순 목사는 높은 곳에 올라가지도 그곳에 마음을 두지도 않았던 것이다. 노동 운동가들이 국회에 진출하고 인권 변호사가 청와대 주인이 되는 마당에 정부 국무 회의실에서도 국회에서도 조화순이라는 이름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는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 활동은 한계가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마치 예수가 철저히 낮은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조화순 목사가 진정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이 책의 부제(노동자의 어머니에서 자연의 딸로 돌아온 조화순 목사가 가슴으로 들려주는 생명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이 그동안 몸담은 사역인 노동산업선교, 농촌계몽운동, 민주화운동, 평화와 통일 운동 등 모든 운동의 종착점은 바로 창조 질서와 땅에 기반한 생명 평등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생명 운동이야말로 조화순 목사가 내려간 가장 낮은 곳인지도 모른다. 작은 꽃 한 송이를 위한 기도를 하고,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의 생명에 감사하며, 땅이 주는 선물인 돼지 감자에게 고마워하며, 몸을 낮추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자연은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그 길 위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회고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하며 노래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가장 낮추고 가장 낮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결단하는 찬송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진양 목사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사, 세계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