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밀 졸라 전진하는 진실
<에밀 졸라 전진하는 진실>, 에밀 졸라, 박명숙 옮김, 은행나무, 2014
80년대를 청년 시절로 보낸 우리 세대에게 에밀 졸라는, 그의 작품보다 드레퓌스의 연관 검색어로 떠오른다. 당시 한길사에서 나온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이 교양 필독서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1894년 평범한 군인이었던 드레퓌스가 독일군과 내통한 간첩으로 지목된다. 이렇다 할 항변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는 비공개 군법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외딴섬으로 유배된다. 군 수뇌부의 증거 날조, 재판부의 부실한 조사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무고한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은 반유대 언론과 군이 유포한 허위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이후 프랑스 사회는 국가안보를 기치로 드레퓌스에 대한 단호한 단죄를 주장한 재심반대파와 불공정한 재판을 문제 삼으며 끊임없이 저항한 재심요구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한다. 전국이 난폭한 이분법의 광기에 사로잡히고, 진실은 길을 잃고 헤맨다.
한편 이미 프랑스 최고작가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의 결백을 확신했다. 그는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마녀사냥에 맞서 진실의 편에 선다.
“진실과 정의는 그 무엇보다도 지고한 가치들이다. 그 가치들만이 한 나라의 위대함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 가치들을 잠시 왜곡시킬 수도 있지만, 오늘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그 가치들 위에 두지 않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것이다” (94쪽)
이 일로 그는 훈장이 취소되고 여론의 비난과 모욕을 한 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잠시 영국으로 망명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한 그의 외침과 싸움은 멈출 수 없었다.
“맹세코 드레퓌스는 결백합니다. 나는 내 목숨과 내 명예를 걸고 그가 무죄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엄숙한 순간에, 인류의 정의를 대표하는 재판부 앞에서, 국가의 발현인 배심원 여러분 앞에서, 프랑스와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나는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것을 맹세합니다. 40년간의 내 작업과 그 노고가 내게 부여하는 권위로써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것을 맹세합니다. 내가 쟁취한 모든 것과 내가 얻은 명성과 프랑스 문학의 전파에 기여한 내 작품들을 걸고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것을 맹세합니다. 만약 드레퓌스에게 죄가 있다면,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내 작품들이 소멸해 버려도 좋습니다! 맹세코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 진술, 239쪽)
마침내 1906년 7월 12일 최고재판소는 군법재판의 유죄판결을 오판으로 파기,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그를 복권했다. 프랑스 정부는 드레퓌스에게 소령 특진과 레지웅 도뇌르 훈장을 수여 하는 것으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사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밀 졸라는 1902년 가스 중독으로 갑자기 사망해 드레퓌스의 무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에밀 졸라 전진하는 진실>은 드레퓌스 대위의 결백을 밝히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로로르〉 지에 게재한 격문 ‘나는 고발한다...!’를 비롯하여 드레퓌스 사건에 관해 저술한 격문 열세 편을 에밀 졸라 자신이 직접 엮은 선집이다. 여기에 아나톨 프랑스의 조사 전문과 에밀 졸라의 인터뷰, 상세한 해설 및 연보, 화보가 포함돼 있어 드레퓌스 사건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 조작간첩 사건을 숱하게 지켜본 우리에게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국가안보라는 미명으로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주홍글씨로 낙인찍는 일이 얼마 전까지도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그 시절에도 에밀 졸라와 같이 진실의 편에서 거짓과 불의에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사족으로, 이 책을 독서하던 때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이었다. 어이없는 참사와 그에 대한 국가의 비정상적 대처에 많은 시민이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다. 그 외침 속에서 이 책을 읽자니 몰입도가 훨씬 더했던 기억이 난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304쪽)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