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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6]
 
 
 
     
 
 
 
작성일 : 22-02-24 00:03
   
사랑으로부터의 창조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044 [140]



사랑으로부터의 창조


<사랑과 노동: 창조의 신학>, 도로테 죌레, 박경미, 분도출판사, 2018

 

“신학은 저주로서의 노동에 대한 억압적 전통의 정체를 밝히고, 가면을 벗겨야 하며,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신학은 인간 노동의 참된 의미와 노동의 주체, 즉 노동하는 인간의 정체성을 밝혀주어야 한다.”(152)

 

철학자 아도르노의 명제 하나를 소개한다. “애니미즘이 사물에 영혼을 부여했다면 산업주의는 영혼을 사물로 만든다.”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문명 속에 살고있는 까닭에, 우리는 애니미즘을 뒤떨어진 것, 혹은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무생물은 기본이고, 사람마저 도구로 여기며 착취하는 것이 우리네 실상이다. 피조세계에 대한 존중, 인간으로서의 품위, 노동의 존엄성 같은 가치들은 자주 외면당하고 있다. 시애틀의 한 인디언 추장은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어떻게 사람이 하늘을 사고 팔 수 있으며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38에서 중인)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교리는 중요하다. 그 종교가 지향하는 바를 잘 알려주는 까닭이다. 도로테 죌레의 진단은 어떠할까. “내재성을 결여한 초월은 인격적으로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고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규정하지도 못하는 무의미한 교리적 주장으로 전락한다.”(38) 초월적 유신론에 매달리는 한국교회에게 딱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저 멀리 계시는 지존자를 숭배하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우리가 그 분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고찰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출발점은 창조이다. ‘무로부터의 창조’, ‘혼돈으로부터의 창조’, 유대교 카발라 전통의 ‘침춤’(하나님의 자기제한) 등등 모두 여전히 유효하고, 저마다 의미가 있다. 도로테 죌레는 <사랑과 노동>을 통해 ‘사랑으로부터 창조’를 노래한다. 창조신앙의 언어는 경탄이라고,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생명의 원천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더 나아가, 고통당하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이 곧 창조주라고,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인류가 노동과 사랑을 통해 공동창조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겪는 굶주림과 착취를 아는 사람만이 하느님이 지으신 선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다. … 절대다수의 형제자매들을 도외시한 채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63)

 

바벨로니아의 창조설화를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저자에 따르면, 바벨로니아의 창조설화는 사회적 불평등을 위한 각본이었다.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권세와 부귀를 누렸고, 백성들은 강제부역에 시달렸다. 고된 노동을 떠넘기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묘사되는데, 그게 얼마나 섬뜩한지 모른다. 인종차별 및 성차별 등등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인 까닭이다.

 

성경의 창조이야기는 어떠한가. 에덴동산을 쫓겨난 아담 이야기에는 노동을 타락에 대한 형벌로, 저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경험으로 알 수 있듯, 노동만큼 삶의 의미를 지탱해주는 것이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노동을 하느냐’일 것이다. 죽음에 봉사하는 노동을 하느냐,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하는 노동을 하느냐, 이 구분선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긴 하지만, 저자의 말은 귀기울여봄직하다. 도로테 죌레에 의하면, 좋은 노동은 3가지 차원이 있다고 한다. 자기실현과 노동자의 가치라는 개인적 차원, 사회적 관계성과 연대성이라는 공동체적 차원, 그리고 자연과의 화해가 그것이다.

 

“하느님은 피조세계 전체와 하나가 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이끈다.”(97) “하느님은 우리를 노동자로, 사랑하는 자로 창조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노동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201) ‘해방’, ‘투쟁’, ‘사랑’을 실천한 두 가지 실례가 인상적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부두 노동자들은 베트남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미국 배에 짐을 싣는 일을 거부했다.(104) 영국의 스코트 바더 회사는 ‘사심 없는 규칙들’을 만들어, 공적복지와 재분배에 힘을 쓰고, 무기 회사와의 거래를 일체 금지하였다.(191) 하나님의 공동창조자인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야 할 일들인데,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저항하는 인간들의 공동체만이 사랑과 노동의 가능성들이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우주와 이 작은 행성을 창조한 하느님, 모든 예속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하느님, 이 하느님은 죽은 자들을 새로운 생명에로 일깨우는 하느님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은 아무 희망 없이 죽어있는 우리가 저항하는 사람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게 하신다. ‘생명을 사랑하는 분’(지혜11:26)은 하느님의 오래된 이름이다.”(278)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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