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모파상 단편선>, 기 드 모파상, 임미경 옮김, 열린책들
오늘은 <모파상 단편선>에 실린 <쓸모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단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기 드 모파상의 단편들은 자본주의 모순이 극심하던 시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성들에 대해,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애틋하게 바라봅니다.
모파상하면 <목걸이>와 <보석>이라는 단편을 떠올릴 분들이 많습니다. <목걸이>는 가짜 목걸이 값을 치르기 위해 젊음과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보석>은 아내가 하나 둘 씩 사 모으던 가짜 보석들이 아내의 죽음 이후 진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석연찮은 보석의 출처에 대해서는 모른척 하고, 그 보석들을 팔아 향락에 빠져드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목걸이>는 내가 젊음과 인생을 바치고 있는 것이 가짜 목걸이는 아닌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보석>은 돈에는 흑백의 꼬리표가 붙기 마련인데, 윤리와 정의는 안중에도 없이 돈을 숭배하는 풍조를 냉소합니다.
그리고 긴 설명은 드릴 수 없지만 <비곗덩어리>라는 단편도 추천드립니다. 인간과 종교가 도덕과 윤리를 앞세워 얼마나 쉽게 이중성과 위선에 빠질 수 있는지 성찰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단편들에 비해 <쓸모없는 아름다움>은 구시대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미 우리 시대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기계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철학을 장황하게 설파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작가의 세태 묘사인지, 비아냥인지 좀 아리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 시절에, 출산하는 생물로서의 여성도 아니요, 모성을 강요받는 여성도 아니요, 남편에 종속된 여성도 아닌, 주체적인 여성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유럽, 백인, 남성인 모파상의 머리에서 나온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주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스카레 백작 부인은 매우 젊고 아름답습니다. 열아홉에 시집을 와 11년 동안 7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더욱 무르익기만 할 뿐 시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남편 마스카레 백작 또한 매우 잘생기고 기품있는 귀족이었습니다. 다만 마스카레 백작은 아내의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에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작은 아내의 주인으로서 아내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아름다운 아내를 임산과 출산을 통해 집 안에 묶어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작 부인은 남편에게 더 이상 출산 기계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남편의 올무에 갇혀서 자기 인생과 아름다움을 쓸모없이 낭비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백작 부인은 극단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교활하다고 할 수 있는 계략을 사용해서 남편을 떼어 놓습니다. 남편은 6년 동안 방황을 하다, 결국 아내의 주체성을 받아들입니다. 소설 말미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기로 한 여성과 남성으로 마주합니다. 모파상은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랑보다 더 깊은 떨림이 있었다고.
모파상은 이 소설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좋은 생각을 툭하고 던져 놓습니다. 아무도 이런 주제를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에 시대를 앞서서 말입니다.
좋은 생각이란 늘 그렇습니다. 척박한 시대에 던져진 좋은 생각은 매우 낯설고 불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씨앗처럼 던져진 좋은 생각은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를 거름 삼아 점점 자라고 무성해집니다. 그리고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는 좋은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사랑을 발전시켜가는 공동체입니다. 그 좋은 생각들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서로 응원하면서 변화의 동력으로 키워가는 것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주어진 사명입니다. 보이는 형제자매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보이는 이웃도 존엄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존엄히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나님 사랑은 타자에 대한 모든 사랑의 결정(結晶)입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