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 담긴 쉬운 글을 써보라
<안녕, 기독교>, 김정주 지음, 토기장이, 2019
늙은이들은 독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겉으로 신사의 옷을 입고 매너 있던 사람이 은퇴 후 돌변하는 경우를 봤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적지 않게 당황스럽지만 세월이 그 분의 긴장을 풀어준 탓이라 생각한다. 아직 늙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신사의 옷을 입지도 않았던 나는 늙어서 얼마나 지독한 늙은이가 될까 벌써 부터 걱정이 된다. 자신보다 더 어리고 반짝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것에 호들갑인가?’ ‘감탄을 잘해 좋겠군’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짧은 글, 기발한 착안만이 글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풍조는 깊이를 논할 수 없는 판이다. 뭘 알까 싶은 애들(?)이 숨을 쉬듯 글을 쓰며, 배설하듯 책을 낸다. ‘틱’하고 ‘톡’ 올리는 짧은 영상처럼, 친구에게 온 문자에 음성 인식으로 중얼거려 ‘톡’ 보내면 ‘쓱’ 훑고 꺼버린다. 더 특별할 것도 없이 기억에 남는 표현 하나 없이 책을 덮었을 때 나의 비참한 도서 선별 능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책을 샀지만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바로 중고 서점에 올려 얼마에 팔지 생각해보지만 받아주지를 않는다. 신앙 에세이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순간 종이값도 나오지 않는다.
심하게 삐딱해서 당황했나?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런 책을 삐딱하지 않게 읽어줘야 한다. ‘내가 언제부턴가 신앙 간증류 책은 읽지 않는데...’ 하면서 피할 게 아니다. 까칠한 독설을 일삼지 마시라. 차라리 잡스러운 독서가 유익이다. 그리고 아무런 비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구나! 뭘 해도 잘 될 친구로군!’하면서 축복을 해주는 것이다. 책을 읽는데 딱히 대단할 게 없어 보이는데 늘 배경처럼 다른 사람들 챙기고 배려 잘하던 교회 청년 생각이 난다. 내가 청년이고 저 친구가 청년부 목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인물 말이다.
본래 목적은 부서 사역자 시찰이면서 청년부 예배드리러 간 담임목사의 심정으로 봤다. 부흥사 설교의 결론처럼 강변은 아니지만 그래도 설교조를 벗어나지 않는 글맺음을 보거나 너무 전도사 같은 말을 해서 오글거렸지만 버터는 원래 느끼한 맛으로 먹는 것 아닌가?
“‘답을 구하는 기도’가 정답이 아닌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가 정답이다.”(98쪽)
“고난이 끝나면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면 고난이 끝나는 것이다.”(119쪽)
태권도 사범님 같은 말씀이다.
그러다가도 당연한 결말 끄트머리에 달아놓은 라임이 신선하다.
“지금은 서로 갑질 할 때가 아니라 갑절의 사랑을 구해야 할 때다.”(198쪽)
“신앙이 좋아질수록 ‘천사’같이 되는 것이 아닌 ‘사람’같이 되는 것이다.”(203쪽)
스스로에게 댓구형 명언질을 마구 해대는 느낌이지만 좋다.
김정주 전도사는 굳어있는 설거지를 보고도 지하철을 타는 동안 흘러나오는 방송에도 마음과 귀를 열어두고 있다. 동파를 막기 위해 조금 틀어 놓아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에도 무릎을 칠 수 있는 예민한 영적 감수성이 좋다. 저자가 축구 좋아하니 나와도 죽이 맞아서 골 장면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빌드업의 중요성을 가지고 신앙적인 주제와 연결하여 좀 더 길게 대화 할 수 있겠다. 만난 적은 없지만 저자는 잘사는 사람이 분명하다. 관계가 좋다는 말이다. 주변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수 있고 존중하는 겸양이 몸에 배어있으니 곳곳에 그를 도와주고 고쳐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천상 전도사다.
너무 혼자 잘나서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을 도통 이해 못하는 것이 ‘지식의 저주’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뭘 몰라도 대단히 모르는 답답한 전문가, 윤똑똑이다. ‘못 배운 것’도 죄라지만, ‘어설프게 배운 것’이 굴레가 되어 지나친 자기 검열 때문에 쓰기도 말하기도 겁내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많이 몰라도 어설프게 가르치기도 하고, 계속 배우다보니 아는 척 좀 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저자는 글쓰기 학교를 열고 벌써 ‘사부’로 일컬어 진다하니 참으로 담대한(간 큰) 처신이다. 이해도 안 되는 심각한 책을 오래 붙들고 있다가 다시 꽂아놓은 경험이 반복되면 책 읽기가 부담이 된다. 깊이 생각하고, 치열하게 살되, 글은 쉽게 쓰자. 역작을 잉태해 내리라는 부담은 털어내고 나도 이런 책을 직접 써보는 것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저자에게 진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