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멍난 복음을 기워라
(<구멍난 복음을 기워라>, 박영철 지음, 규장, 2016)
새해를 앞두고 교회 표어를 “다시 복음으로,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로 정하고 새해를 시작하였다. 위드 코로나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교회가 이제는 회복의 길로 가야 하는데 단순히 지난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회복이 아니라, 다시 복음으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롬 1:16). 복음은 구원의 소식을 말한다. 말씀에 예언된 대로 메시아이신 예수가 이 땅에 오셨으며,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소식이다. 이 복음을 믿는(영접) 자에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 교인들은 복음을 통해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다. 복음은 그들의 실제적인 능력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복음의 언어는 풍성하지만 복음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복음을 경험하면서도 힘 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복음이 삶에 녹아들지 않아 “신앙 따로, 삶 따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세상은 복음의 메시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고, 그 복음을 전하는 교회마저 등지게 되었다.
왜 복음의 능력이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가? 저자는 우리들이 믿고 전하는 복음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 메시지가 처음부터 복음을 오해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그러한 오해의 소지를 “복음 메시지에 생겨난 구멍들”이라고 말한다. 이는 복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방법 혹은 과정에 구멍(문제)이 생겼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예수님을 주님(Lord)이 아니라 구세주(Savior)로 소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 왜 문제라는 말인가? 구세주라는 말의 의미가 ‘이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해주시는 주’라고 한다면, 주님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분을 구세주로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과 보장으로부터 엄청난 안도감과 함께 기쁨과 감격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믿음의 결과로 어느 정도 헌신하는 삶을 살며, 어느 정도 삶의 변화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구세주라는 개념에는 그분이 내 삶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주인이시라는 개념이 빠져 있거나 희미하게 포함될 뿐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주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하는 것은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기 때문에 복음 메시지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저자는 복음을 다섯 가지 핵심 부분(죄, 십자가, 부활, 회개, 영접)으로 나누고, 각각 어떤 구멍이 생겼는지 지적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윤리적인 죄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신을 주인으로 삼은 근본적인 죄를 지적하지 않은 것, 십자가의 대속을 통한 죄 사함과 칭의 및 구원을 강조하면서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충분히 부각시키지 않은 것, 도덕적이고 윤리적 죄에 대한 회개를 외치면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한 죄에 대해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제시하면서 그분이 나의 삶에 절대적인 주권자(주님)임을 각인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구멍들을 깁는 방법은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고, 부활의 능력을 믿으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구세주에 초점을 맞춘 복음에서부터 돌이켜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온전한 복음을 믿고 전하는 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복음으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본질을 회복함으로 상황에 흔들림 없이 힘 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와 교회가 되어야 한다.
권종철목사/예수마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