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제임스 햄블린 저, 허윤정 역, 추수밭, 2021
학생들은 ‘묵학’ 시간이 끝나면 보던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가만히 멈추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길고도 짧은 5분이 흐른다. 실눈을 뜨고 딴 짓을 하거나 조는 학생이 많다 싶으면 잔소리가 되지 않을 만큼의 경계 더듬다가 결국 잔소리를 하게 된다. 지금과 과거의 자신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자신을 더 알게 하는지, 다리도 마음처럼 후들거리는 현실에서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어디에서 나는지, 반복할수록 심한 잔소리가 되어간다. 이렇게 쓰고 나니 누군가 나를 심오한 영성가로 오해하지는 않을는지 걱정이다.
누군가는 관상기도로 내면의 무언가가 자라더라고 그러던데 난 늘 도루묵이다. 숭고한 바람이 그치지 않았음에도 건장한 이기와 욕심이 알몸처럼 드러나는 반복이 이제는 무섭지도 않다. 내 맘 같지 않은 내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까 기대가 현실에 발을 딛고, 비로소 무언가 할 엄두가 생기는 거다. 그런데 큰일이다. 또 한 가지 내 맘 같지 않은 몸에 떡국 넘어가는 소리가 급기야 채근하는 소리로 들리는 거다. 꿀꺽, 꿀꺽, 어쩌라고.
집에서 밥을 먹으면 가끔 아내가 알약을 한 움큼 쥐어줄 때가 있다. 그러면 복잡한 심정이 되어 순종적으로 받아먹는다. 무슨 약들인지 모르지만 공기놀이 할 때처럼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예뻐서 좋다. 나이 먹듯 알약은 꿀꺽 잘 넘긴다. 목사라고 내 마음,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몸에는 관심이 없었다. 몸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을 알아가라고 학생들에게 말한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얼굴이 붉어질 판이다.
상황이 이러니 서점에서 <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봤을 때,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 덕에 아내에게서 알약을 받아들 때의 복잡한 심정이 그쳤다. 저자인 제임스 햄블린은 인지, 성, 노화 등 인체에 관한 통념을 뒤집는 이야기들을 유쾌한 어조로 풀어낸다. 몸털과 속눈썹은 계속 자라지 않는데 머리카락은 왜 계속 자랄까?, 곱슬머리는 왜 생길까?, 면역력을 증진할 수 있나요?, 잠을 덜 잘 수 있는 훈련이 가능할까요?, 종합 비타민을 먹어도 괜찮을까요?, 유제품을 먹어야지, 안 그럼 나중에 뼈가 부러질까요?, 남자는 왜 젖꼭지가 있을까요? 이처럼 저자가 꼭지로 잡은 질문은 백 한가지나 되고 하나같이 흥미롭거나 몸에 꼭 필요한 지식을 준다.
저자는 사실 전달에 치중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래서 각 꼭지마다 읽는 재미와 몸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심코, 자주 먹고 있는 것 가운데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들, 그리고 경각심을 가지고 삼가던 것들 중에 그러지 않아도 될 것들이 꽤 많았다.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이 아닌데 몸에 관한 무지가 몸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아뜩해진다.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