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제자도를 위한 구원론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 매튜 W. 베이츠, 새물결플러스
수많은 전도 집회가 있었다. 이를 통해 많은 결신자들도 얻었다. 그렇다면, 그 결신자들을 통해 교회는 더 거룩해졌는가? 사회는 좀 더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끼게 되었는가? 저자는 결신자는 늘어났지만, 참된 제자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늘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가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선포된 메시지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온전한 복음이 외쳐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복음으로 이해한다. 교회는 이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죄용서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선언한다. 저자는 복음은 이보다 더 부요한 것임을 밝힌다. 참된 제자도가 상실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복음이 온전히, 충분히 외쳐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을 넘어 참된 제자도로 이어지게 만드는 온전한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가 만유의 왕이시라는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셔서, 만유의 왕이 되셨다는 선언이다. 구약에서부터 기다려온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예수가 왕이 되어 실현하신다는 소식이다.
이 복음 앞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을 넘어서,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해야 한다. 저자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단지 사건에 대한 동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대상을 향한 충성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밝혔다. 즉, 우리는 만유의 왕이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다스림 앞에 신실한 충성을 드려야 한다. 그것이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의 삶이다.
저자는 그동안의 복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에 그치는 복음, 지적 동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믿음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이를 넘어 성경은 좀 더 온전한 복음, 즉 주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역동적인 관계로 초대하는 복음을 제시하였고, 이에 대한 응답은 인격적 대상을 향한 오롯한 충성된 삶임을 제시하였다. 복음의 변형이 아니라 상실되어 있던 성경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다.
그동안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던 문화는 구원문화였다. 구원티켓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는 문화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과 달랐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살아가는 문화, 참된 제자도를 실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성령의 이끄심 속에 하나님 사랑, 서로 사랑을 실현하는 문화였다. 하나님은 예수를 왕으로 세우심으로 이를 이루고자 하셨다. 예수는 이 땅에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초대할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왕으로 그들을 성령 안에서, 사랑과 진리의 말씀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성도는 예수가 하신 일을 믿고 의지할 뿐만 아니라 왕이신 예수께 현재적 충성을 신실하게 드리는 자이다. 저자는 온전한 복음과 이에 합한 응답을 통해 구원의 문화를 넘어 제자도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의 제자도 상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온전한 복음과 충성을 강조한 것은 분명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교회의 제자도가 온전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이다. 예수가 왕이심을 알고, 예수께 순종하라는 메시지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만 해도, 제자도는 시작될 수 있다. 나의 죄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는데, 어찌 그 분을 십자가로 이끈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십자가 속에도 제자도로 사람을 이끄는 힘이 담겨져 있다.
제자도의 문제는 온전한 복음 메시지의 회복, 바른 응답에 대한 촉구의 문제를 포함하지만, 근본적으로 제자도를 실행하려는 사람의 한계가 문제다. 사람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은 바른 복음을 알고 있고,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알고 있어도 끈질기게 제자도의 길에서 이탈하도록 이끈다.
결국 제자도의 문제는 사람의 중심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길은 하나다. 사람의 분투와 하나님의 은총이다. 사람은 바른 복음에 대한 지식을 쌓기도 하고, 충성을 결단하고, 부지런히 은총의 수단을 활용하기도 해야 한다. 거기에 은총이 필요하다. 은총이 더해져야 한다. 난 은총의 절대성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빚으시는 은총이다. 사람 안에 이율배반적 흐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혼자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지런히 은총을 구하는 사람의 분투와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도우심 만이 제자도의 여정에 유의미한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복음의 회복과 신실한 충성으로의 촉구는 은총을 갈망하는 인간 차원의 분투 중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사, 이에 대한 모든 탐구의 노력과 결단을 통해 제자도의 여정에 유의미한 진보를 허락해주시길 갈망한다.
정승환 목사 (한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