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2014
지난 11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518의 주역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였다. 지금까지 5.18광주민주화 운동에 관련된 책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 동안 뉴스와 방송, 영화를 통해 이 운동에 대하여 느끼고 이해하였다. 내전이 아닌데도 자국민을 살상한 사건은 지구상에 그렇게 흔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한다. 나는 1980년 5월에는 79년 군대 제대를 하고 복학한 3학년이었다. 5월15일 대규모의 학생들이 남대문 서울역으로 몰려갔고 당시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계엄군부에 대하여 시위가 일어났다. 나는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친구들 따라 시위에 참여하였다. 나는 서울역에 있었고 여러 시민들이 학생들과 시위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토론을 하였다. 군부와 학생 대표 간에 협상이 잘 이루어 졌는지 학생들은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군부는 5월17일 국회를 압박하여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전국적 휴교령을 내리게 되었다.
급기야는 5월18일 광주 학생들의 등교를 공수부대들이 막다가 광주사태(5․18광주민주화 운동은 '광주민중항쟁', '광주시민항쟁', '광주항쟁', '광주의거' 등으로 불리나, 과거에는 신군부와 관변 언론 등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광주사태', '폭동' 등으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 일어났다. 학교는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통제되고 걸러진 뉴스와 정보를 통해 광주사태를 접하였다. 그런 가운데 우리 사회는 점점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정권을 잡았던 군 수뇌부들은 모두 재판에 넘겨졌고 사태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 운동에 포함되지 않은 멀리 떨어져 있는 제3자로서 그 당시 상황의 잔혹함에 대하여 경악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제3자(군인도 아니고 광주시민도 아닌)였던 것이다. 제3자인 나는 한강이라는 작가의 518광주민화운동을 주제로 한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읽어 보기로 하였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싶었지만 읽어 보지 못해)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 시가,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상문학상(2005) 오늘의 젊은예술가상(2000) 한국소설문학상(1999), 이상문학상(2005)을 수상하였다. 현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재직 중이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 '내 여자의 열매'(2000)와 장편소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채식주의자'(2007), 그리고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2007)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2009, 개정판) 등이 있다.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5월 16일 한국인 최초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교보문고 소개)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한강의 아버지는 한승원으로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의 삶' 등을 그려낸 한국의 거장 소설가다 그의 집안은 문인 집안이었다.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 작가는 가족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그 사건'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고, 잊혔다고 생각했지만 작가에게는 해가 갈수록 또렷한 단상으로 남았다고 한다. (채널 에스 인터뷰)
이 책은 에필로그 포함 총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6명의 화자가 사건의 내용을 소개한다. 6명의 화자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만난 적이 있고 연관되어 있다. 소설은 개별 화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풀어 가고 있다. 이런 방식은 소설을 전개하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저자는 '소년이 온다'를 제목으로 한 이유를 밝혔다. '소년은 이미 죽어서 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넋으로도 오고, 우리가 호명하면 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참혹하고 슬픈 사건 속에서 사랑의 길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 또 한편으론 억울하게 죽고 장례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한 소년의 혼이 구천에서 방황하다 이승에 오지 말고 편한 저승에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이야기는 5월 20일 정대라는 한 소년이 계엄군의 총에 맞고 사망한 다음날인 80년 5월21일부터 시작된다.
1장에서는 같은 집에 살던 친구 정대를 찾는 중학생 동호가, 2장에서는 동호가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정대가, 3장에서는 동호와 함께 병원에 간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던 은숙이가, 4장에서는 동호와 함께 끝까지 병원에 남은 진수와 함께 고문 받던 대학생이, 5장에서는 동호와 함께 병원에 남아있었던 선주가, 6장에서는 동호를 잃은 동호의 어머니가 각각 주인공 시점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1장 어린 새 : 중학교3학년인 동호네 집에서 세 들어 살던 단짝 정대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어느 날 정대가 총을 맞아 쓰러진다. 이 광경을 본 동호는 친구를 돕고 싶었지만 따라 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도망간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도청에 가서 상무관에서 시신수습을 돕는다. 이 때 병원에 남아 부상자와 사상자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던 진수 형과 역시 시신 수습과 부상자를 돌보는 은숙(수피아 여고 3학년)이 누나와 선주(미싱사)누나를 만나게 된다. 며칠 뒤 군대가 들이닥칠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동호는 여기서 의문점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망자를 왜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로 감싸는지를. 은숙은 대답한다. 저들은 반란군들이고 우리가 나라라고. 동호는 가족들이 시신을 찾고 닦아 주는 행위를 보고 예전에 할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생각한다. 마치 새한마리가 시신에서 날아간 것처럼. 동호는 계속 의문을 품게 된다. 도청에 계엄군이 들어 올 때 왜 누구는 남고 누구 떠나는지? 모두 떠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동호의 의문으로 첫 장은 시작된다.
2장 검은 숨: 죽은 정대 즉 혼이 된 정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다. 정대는 눈을 뜨니 자신이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혼이 된 자신의 영혼을 통해 부패해가는 자신의 시체를 본다. 그리고 자신의 누나와 동호가 5월27일 죽었음을 감지하고 속상해 한다. 며칠 뒤 군인들이 정대와 함께 죽은 다른 사람들의 시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태워버린다. 정대는 자신의 시체가 타버리자 자유로워 졌음을 깨닫고 하늘 위로 자유롭게 날아간다. 검은 숨은 바로 그 혼이 아닐까한다.
3장 일곱 개의 뺨 : 시간은 5년이 흘렀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은숙은 병원에서 살아남은 이후 출판사 직원으로 일한다. 은숙은 살아남아서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신을 원망한다. 은숙은 그러한 이유로 화장도 하지 않고 삶 같지 않은 삶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은숙은 부정한 내용을 쓴 희곡 출간을 도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7대의 따귀를 맞는다. 그 뺨따귀는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억울하게 죽은 자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루지 못한 이유 때문에 현재의 삶을 괴로워한다. 결국 그 희곡은 출간되었고 은숙은 그 희곡을 바탕으로 구성한 연극을 직접 보며 동호를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4장 쇠와 피 : 시점은 1990년경이다. 여기에 당시 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교육대학교에 다니던 복학생 '나'가 등장한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했던 김진수와 함께 교도소에 가게 된다. 함께 교도소에 가게 된 대학생은 밥을 같이 먹는 짝이 되었는데 이 이야기의 관찰자가 되어 서술한다. 김진수는 총기를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도 유난히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 재판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증거부족으로 결국 석방되어 나왔다. 출소 후에도 트라우마 때문에 잠을 못 자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결국 자살했다. 김진수의 유서와 사진이 발견되는데 그 사진에 죽은 동호가 찍혀 있었다. 계엄군이 도청에 들어 왔을 때 어린 학생들에게 가라고 했으나 동호를 포함한 몇 어린 학생이 남겠다고 해서 진수는 남은 학생들에게 캐비닛에 숨어 있다가 손들고 나가면 계엄군이 살려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계엄군 장교가 어린 학생들을 무참히 총으로 쏴 죽였고, 그 장면이 찍힌 사진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진수는 이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 사진으로부터 동호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드러나게 된다. 결국 5월27일까지의 상황 그 이후 남은 자들에게 들어 닥친 혹독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5장 밤의 눈동자 : 시점은 2000년이다. 미싱사가 직업인 선주의 이야기이다. 상무관에서 일하고 경찰에 연행된 후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그녀는 시민단체에 근무하게 된다. 선주는 시민의 사연을 받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에게 인터뷰요청을 받는다. 선주는 인터뷰에 응하기 싫었다. 아니 어려웠다. 작가가 다른 사람과 인터뷰한 내용과 그 당시에 관련된 논문을 주고 인터뷰대신 녹음을 하여 보내오길 요청하였으나 그날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그녀는 차마 용기를 내 녹음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선주는 고문 이후 살아갈 힘을 잃게 되지만 4장의 동주의 사진을 보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1장에서 동호가 죽기 전 선주와 같이 있을 때 질문했던, 태극기를 왜 사망자에게 덮여 주는가?를 상기하게 한다. 왜냐면 우리는 그냥 고기 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가 우리를 죽였는데 국가를 대표하는 태극기를 우리에게 덮었느냐다. 계엄군이 국가가 아니라 우리가 국가기 때문이다.
6장 꽃 핀 쪽으로 : 시점은 2010년이다. 동호 어머니는 동호가 죽기 전 동호를 데리러 도청에 갔지만 끝내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 뒤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시위를 한다. 하지만 동호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이후에는 시위 중단하고 동호를 그리워하며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식을 앞세운다는 것은 단장의 아픔일 텐데 목숨이 쇠심줄 같아 밥이 넘어간다는 독백을 한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 한강 작가가 눈 덮인 소년의 무덤에 가서 촛불을 켜게 된다. 촛불은 마치 눈 덮인 무덤 위의 램프 같았다. 어둠을 밝히는 램프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를 밝힌다. 10살 명절 때 친척들이 와서 그 당시 이야기를 하는 데, 친척집에 살았던 두 명의 어린 중학생이 죽었다는 대화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광주에 출장을 가서 사온 사진집을 보고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국가가 무엇인가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당시 여름을 건너 현재 살고 있는데, 자기도 살았을 수 있는 그 집의 두소년은 여름을 건너오지 못했다. 왜 그럴까? 국가의 개인에 대한 모욕이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되어 이 소설을 만들게 되었다.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동오의 작은 형을 만난다. 그는 더 이상 동생이 모욕당하지 않도록 진실 되게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우리에게 발생되었다. 아직도 북한이 사주하여 일어난 폭동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망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제대로 된 장례식이 행해지지 못하면 망자의 혼은 구천을 떠돌기 마련이다. 국가 폭력를 수행했던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지만 아직도 상흔이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치유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제 권력 즉 군대로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518민주화 운동이 없으면 아직도 5공화국 시대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는 애를 끊는 고통의 산고로부터 민주화가 달성되고 촛불운동이라는 행위로 발전되었다. 이 책을 읽음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희생은 왜'이다. 얼마 전 절두산 성지와 양화진을 다녀왔다. 특히 절두산성지에서 '왜 그 수많은 사람이 종교에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순교(殉敎). 따라죽을 순(殉)는 '따라죽다', '순직하다', '목숨을 바치다' 등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 이다. 殉敎는 ‘자기가 믿는 종교(宗敎)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殉]’을 이른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종교적 철학적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죽음으로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죽지 않고 물러서면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당시의 희생된 광주 학생 그리고 시민도 살 수 있었지만 바위에 유리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깨지는 것으로 죽음으로서 그들이 옳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은 절대적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생각과 양심'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에 관한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20세기에 가장 탁월하고 독창적인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이다. 그녀가 저술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공개 재판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재판과정을 지켜본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한나 아렌트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으로부터 평범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다.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세간의 생각과는 매우 달랐다. 518광주학살을 주도한 신군부의 잘못된 명령을 받은 군인들의 행위이다. 그 군인들도 법정이든 다른 곳에서 아이히만처럼 그저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어떤 군인들은 발포명령이 떨어져도 하늘로 총을 쏘거나, 부상당한 학생이나 시민들을 치료해 주거나 병원에 데려갔다. 그들은 왜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까? 그것은 상관의 명령에 대해 생각하고 양심에 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적절한 평가 및 보상을 위해 계속적인 진행 중인 줄 알고 있다. 망자와 상처를 받은 모든 이의 치료와 보상을 위해서다. 그래야만 혼이 구천을 떠나 안식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다른 한편으론 양심에 맞게 판단한 군인들에 대한 평가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엄군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아니면 당시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이 주도적인 계엄군인들과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들에 대한 옳은 평가를 함으로써, 더 많은 생각하고 양심적인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각과 양심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 책이다. 한강이란 작가의 소설 구성 방식은 나에게 매우 신선했다. 매장 시점에 따라 화자를 변화시켜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은 매우 신선했다. 이런 방식은 좀 더 독자의 감성을 일깨울 수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소설의 기법을 통해 518이라는 사실에 치중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한강의 다른 책을 읽고 싶다.
김종일 대표 (㈜비앤에이치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