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심하라, 그리고 희망하라.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선순환, 2021)
20세기 말에 개봉되었던 영화 3편을 20여 년 만에 소환해봅니다. 첫 번 영화는 B급 감성으로 충만한 ‘론머맨’(Lawnmower Man)입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입니다. ‘론머맨’이 전화선(통신망)을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가상현실의 지배자가 되는 마지막 장면이 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두 번째는 ‘트루먼쇼’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TV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생활이 생중계되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는 주인공이 가짜 세계에서 진짜 삶을 찾아 탈출하는 영화입니다. 세 번째 영화는 영화사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매트릭스’(Matrix)입니다. 새천년을 코앞에 둔 1999년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매트릭스가 그리는 세상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컴퓨터에 의해 인간이 양육되고 인체 에너지를 모두 빼앗기는 끔찍한 세상입니다. ‘매트릭스’에 갇혀있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인간에 대한 설정 자체가 전율을 일으킵니다. 이들 영화는 당시 곧 다가올 새천년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매개로,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당연한 세상이 아니라, 의심받아 마땅한 세상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였습니다. 21세기가 된 지금은 어떨까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실천 신학자이며 설교가인 윌리엄 윌리몬(William Willimon)은 <목회자>란 책에서 목회자는 복음을 살아내도록 촉발하는 사람이고 말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그는 복음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져오신 새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목회란 현 세상 풍조와 가치관에 순응하도록 돕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낡은 세상을 뛰어넘어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촉발하는 일이면서 훈련받은 전문 사역임을 강조합니다. 목회자의 가장 큰 덕목은 세상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복음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당연한지를 거듭해서 묻고 있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 세상입니다. 그것도 자본주의의 최신 버전인 신자유주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 이후 자본의 축적을 거듭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마침내 전 지구적인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인생살이의 대전제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인류를 책임질 만큼 건강한 체제인가? 이에 대해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19장에 걸쳐 그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풀어냅니다. 저자는 현대사회와 문화를 관통하는 자본주의의의 생생한 움직임을 끈질기게 추적해 왔습니다. 그는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투쟁과 시위가 현 세계에 대한 모순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 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정적인 모순입니다.
그가 말하는 모순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 지난 30년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후변화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와 환경파괴는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인류가 시급하게, 공동으로 대응을 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위기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자본주의는 진화하면서 뛰어난 기술력을 확보했습니다. 그럼에도 비인간적이며, 자연을 파괴하는 생산체제를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요? 자본은 언제나 성장과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성장이란 복리 성장입니다. 세계 자본시장경제의 규모가 약 25년마다 두 배로 커지고 있습니다. 1950년에 4조 달러였던 시장규모가 2000년에 40조 규모로, 현재는 80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2050년이면 160조, 2075년이면 320조, 2100년에는 640조까지 커질 것입니다. 지구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저자는 미시적인 눈으로 지구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내전과 지정학적 충돌, 갈등들을 살펴보면서 이는 자본주의 시장이 안고 있는 모순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류에게 닥칠 대재앙은 불을 보듯 환하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하비가 다루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 신자유주의 체제, 소외의 문제, 자유의 문제, 기후 위기 및 코로나 팬데믹 문제 등은 현 자본주의 체제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강력하게 반증합니다. 사회의 부조리는 불평등 때문이며, 불평등은 구조적이기 때문에 구조를 바꾸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오로지 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로부터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사회주의적인 세계로 평화롭게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나긴 여정의 사회적 운동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성장주의 신앙에 매몰되어 복음이 가져온 새로운 세상 꿈꾸기를 잊어버린 한국교회에 정신 차리라고 건네는 냉수 한 사발과도 같습니다. 특히 하나님나라 복음을 겨우 ‘보상적 소비주의’ 시스템이 주는 거짓 만족으로 바꾸어버린 이 땅의 목회자들에게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책 제목이 자꾸만 이렇게 읽히네요. ‘한국교회는 당연한 걸까요?’
이광섭목사/전농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