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을 잃는 순간에 만나는 철학자들과의 기차여행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2021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시작으로 루소, 소로, 소크라테스, 에피크루소, 시몬 베유, 간디, 공자, 세이 쇼나곤, 니체, 에픽테토스, 보부아르,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이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던지는 책이다. 이들 위대한 철학자들이 사고하고 생각하고, 철학한 모든 것들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절대 멀지 않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1963년에 태어났고, <뉴욕 타임스> 기자로, 스탠퍼드 대학에서 나이트 저널리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뉴델리, 예루살렘, 도쿄 등 3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연재해, 질병, 쿠데타 등에 대한 기사를 써왔다. 2011년에는 영혼이 가장 따뜻해지는 여행 <신을 찾아 떠난 여행>을 펴냈다.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는 평을 받으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간 그의 저서는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을 비롯 세계 각국에서 출간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머릿말에서 에릭와이너는 '지혜'와 '지식'을 구분하면서 출발한다. 지식과 지혜는 종류의 차이이지 정도의 차이가 아니며, 지식은 지혜를 방해할 수 있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며,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은 이 소유할 수 없는 지혜를 추구하는 행위이다. 현대에서 철학은 삶과 동떨어진 구닥다리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있어서 철학이 줄 수 있는 지혜는 필요하다. 또한, 삶의 단계별로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 그래서 에릭 와이너는 소위 '육체없는 영혼'같은 철학자들 대신 결점이 많고 삶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문제들을 고민한 14명의 철학자를 선별해 각 인생의 단계별로 필요한 지혜를 빌려오고자 하며, 독특한 목차는 그런 취지에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새벽-정오-황혼' 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며, 이는 인생의 유년기-중년기-노년기에 대응된다. 목차를 보자.
1부 새벽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3 루소처럼 걷는 법
4 소로처럼 보는 법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2부 정오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9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10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3부 황혼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나오는 말: 도착
철학적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처에 존재한다고 에릭 와이너는 말한다. 심지어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철학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대답을 도와줄 사람은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위대한 아우렐리우스에게도 아침은 커다란 적이었다. 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5분만 더!’를 외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침대에서 나오는 데 성공한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에릭 와이너는 마르쿠스가 고민한 논점과 견해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며 어떻게 그 자신의 대답에 이르렀는지, 그의 저서 <명상록>과 다양한 일화들을 인용하며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스토아 철학자로 알려진 에픽테토스는 삶에 찾아오는 모든 난제들에 무조건 맞서 싸우라고 강요하지 않고,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 통제 바깥에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며, 당신에게 맞서 싸울 중요한 것들을 파악하라고, 그리고 맞서 이겨내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 외에도 폭력이란 ‘상상력의 실패’라고 이야기하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간디부터 걷기란 “자극과 휴식, 노력과 게으름 사이의 정확한 균형”이라는 관점을 제시해주는 루소까지, 지혜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전염성을 품고 있었던 열네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이 우리에게 덜컹덜컹 기차 여행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 제목의 대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충분히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조차도 언젠가 다가온 즐거움, 괴로움 앞에서 나 자신을 잊고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되묻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가는 곳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어쩌면 신탁이 옳을지 모른다고, 소크라테스는 결론 내렸다. 어쩌면 정말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지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지녔는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 운명같이 다가올 ‘나이 듦’에 대해 보부아르가 남긴 열 가지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다. 보부아르라면 이런 목록은 절대 만들지 않았겠지만, 그의 지혜를 우리에게 간추려 전하는 자신은 그래보겠다고 저자 에릭 와이너는 능청스럽게 목록을 정리해 전해준다. 평생을 살아온 자신에게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가장 멀어질 수도 있는 노년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보부아르의 대답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어 큰 울림을 전해준다.
보부아르의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에선 과거를 받아들일 것, 친구를 사귈 것, 호기심을 잃지 말 것,
습관의 시인이 될 것,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등을 말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여운이 퍼지듯 책 속 철학자의 조언도 우리 인생의 지혜로 서서히 자리 잡는다. 단순명쾌한 삶의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지혜를 오래된 철학자의 경험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이에게 권하는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마음을 실어보자. 소크라테스와 고대 아테네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와 20세기 파리에 이르기까지, 에릭 와이너가 선택한 철학자들과 장소들은 우리가 오늘날 혼란스러운 세상을 항해할 때 중요한 표지판이 되어줄 것이다.
홍기석 목사(로마연합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