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명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지음, 조나단 에드워즈 엮음, 김보람 옮김, 좋은씨앗 출판사
내년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어떤 책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까를 고민하다 아내가 곁에 두고 종종 읽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라는 책이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살 던 시대는 1700년대 유럽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넘어오던 시기였다. 그들이 정착하는 과정 중에는 기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 극심한 갈등과 분쟁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신식 무기를 갖고 있던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진압하고 그들의 토지와 자원들을 차지했고 노예로 삼았다. 흔히 동양을 체면문화, 서양을 죄의식 문화라고 한다. 성서는 분명 살인을 금하고 있지만,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던 이유는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에게 원주민들이나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착취와 노예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유럽인들에 대한 반감이 가득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한 사람을 복음의 통로로 택하셔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 책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가 남겨 놓은 생애의 기록과 일기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29세라는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살다 간 그이지만 그의 일기들은 나를 비롯해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가 적어놓은 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렇게 눈 감는 날까지 하나님께 사로잡혀 주님 한 분만을 위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영적으로 민감한 그는 자신의 영적 무지와 교만을 탓하며 매일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병약한 체질과 상관 없이 하나님께 사로잡힌 채 제 몸을 사리지 않고 원주민들의 영혼을 구하는 것에 혼신을 다한다.
그는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루 평균 30-40km를 말을 타고 이동했으며 그 이상을 이동할 때도 많았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구원의 열정에 사로잡힌 그를 언어적인 장벽, 굶주림, 추위, 노고와 삶의 위협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원주민들의 전도가 쉬웠을까? 아니다. 백인들에게 반감이 있는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또한 좌절과 낙담과 같은 실패의 순간들이 그의 일기에는 이곳 저곳에 적혀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그가 주님께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하나님을 전하는 일, 오직 하나님 나라 뿐이었다.
그의 선교는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그의 책은 “브레이너드는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죄인이며 연약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고 말한다. 그의 일기를 조금만 읽더라도 그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있다. 그의 목숨을 건 원주민 선교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명과 사명은 대단히 주관적인 영역이다. 그렇기에 객관화하기가 어렵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라는 것을 증명할 길은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수 밖에는 없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예수를 체험 후 바울로 변한 것 같은 극적인 드라마와 같은 체험과 소명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한 순간의 경험으로 삶이 180도로 변하지는 않아도 꾸준히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부어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이해하며 그 길로 나아가기도 하는 것 같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보면 딱히 특별한 순간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기도와 회개는 자칫 그가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들을 보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매 순간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를 구했던 그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원주민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고, 그는 그것에 조금씩 응답하며 나아갔다.
삶은 매 순간이라는 조그마한 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예술품 같은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밝은 부분들로만 삶을 채우고 싶어하지만, 인생에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늘 발생한다. 그것들은 때로 삶의 어두운 부분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삶 또한 늘 밝고 희망찼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그는 처절하리만큼 영적 씨름을 하며 주님 앞에 엎드리고 또 엎드렸다. 그의 눈물과 기도로 채워진 그의 신앙고백이 삶을 이루어내고 그 삶이 후대에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책을 덮고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 내 안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온도는 어떠한지. 그의 뜨거움이 추운 계절 그대들의 마음 또한 덥혀주면 좋겠다.
민학기 (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