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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21-11-25 00:27
   
메시아의 이름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8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67 [144]



메시아의 이름들


<메시아의 이름들>, 월터 브루구만 지음, 이옥용 옮김, CLC, 2018

 

이 책은 유명한 메시아 예언인 이사야 9:6에 기록된 네 가지의 메시아의 호칭 “기묘한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이 명칭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해준다. 즉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신약의 예수께 어떻게 성취되는지 성경의 본문을 통해 풀이해 주고 있다. 

 

첫째 주 : 기묘한 모사

 

“모사”는 통치의 실행, 즉 관리하고 계획하고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가리킨다. “기묘한”이라는 단어는 명사인 ‘모사’를 수식하는 단어이며, 특별한 지혜와 선견지명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기묘한 모사”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을 자신의 백성의 생활 질서를 바로잡아줄 특별한 계획과 정책의 수행자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착취와 박해라는 옛 통치 형태와는 구별된 대안적 통치 아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예수님으로부터 들었을 때, 자신들의 시선을 그분께로 향하였고,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묘한 이유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예수님은 기존 질서를 위협하셨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이어 나가도록 초청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왕을 인정하는 것이 단지 성탄절 전야의 노래만이 아니라, 그것은 새 사명이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새로운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자, 새로운 체제에 부합하는 행동으로서의 초청이라는 것이다.

 

둘째 주 :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신”(mighty)이라는 수식어는 용기와 담대함을 나타내며,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위협을 물리쳐 자신의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줄 견고한 능력을 지닌 자로 나타난다. 물론 “아버지의 뜻”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거기서 나온다는 점이 다르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서 귀신을 쫓아낸다(막1:21-28). 그리고 바다의 폭풍을 잠잠케 한다(막4:35-41). 두 이야기의 핵심은 “순종”이다. 더러운 영과 폭풍은 혼돈과 사망의 힘이다. 예수님은 이 사망과 혼돈의 위협을 제어하고 복종시킨다. 따라서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기능을 수행하는 생명의 수여자이시다.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도 제공될 수 없기에,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근거한 생명의 능력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진실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신 이 일을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변화를 창조하는 이 행동 속에 함께 참여하도록 초청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셋째 주 : 영존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가족의 이미지를 옮긴 것으로, 힘과 권위를 바탕으로 한 계급적이며 가부장적 개념을 암시한다. 그리고 “영존하시는”이라는 수식어는 여러 세대를 걸쳐 한결같이 신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부장적 전통에서 가족의 삶을 보장하고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이로서 “아버지”가 하나님의 이미지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은 자비와 긍휼의 이미지와 부합된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은 약한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게 귀를 세우신다(시시65:5-6). 따라서 메시아의 임무는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다. 가족 전체를 보호하고 한 나라의 안위를 보장하는 자인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어야만 한다. 

 

“영존하시는” 존재로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세대를 거쳐 이어져 내려가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진실로 가족의 약속을 이행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다(마28:20). 이 “영속적인” 부분은 여러 세대를 거쳐 교회가 이러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임재가 기쁨과 확신과 선교 동력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넷째 주 : 평강의 왕

“평강”은 “샬롬”(shalom)이라는 단어이며, 그것은 적대감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복지를 증강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공적인 사회체제의 유지를 말한다. 

 

기독교 전승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갈등은 나사렛 예수 안에서 극복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 즉 평강을 가져올 책임을 가지시며, 그것을 완수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시작하고 증진시킬 평강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평강이자, 평범한 기대에 도전하는 평강이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약함 가운데 얻어지는 평강일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평강의 왕”으로 고백하도록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일반적 평강이 아님을 인식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즉, 예수님이 가져오는 평강은 위험하고 체제 전복적이며, 모든 보통의 것과 반대된다는 것이다.

 

대림절(待臨節)과 성탄절(聖誕節)을 앞두고, 메시아의 이름들이 세상을 향한 복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대림절은 말 그대로 기다리는 절기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묘한 모사”로서의 예수님의 새로운 통치를 인정하며 새로운 체제에 잘 부합하고 있는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생명의 수여자로서의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영존하시는 아버지”로서의 예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삶을 잘 살고 있는지, 그리고 “평강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의 평강의 삶을 잘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권종철 목사(예수마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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