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게시판
바이블25
크리스천라이프
커뮤니티
갤러리
성경/찬송가
지역정보
로중
전도
뉴스
QT
전도모음
Cristian YouTube
     
커뮤니티
칼럼
명언묵상이미지
하늘양식
오늘의책
십자가
명상
영상
설교
말씀
독자편지
독자편지 [122]
 
 
 
     
 
 
 
작성일 : 21-11-19 00:42
   
공정하다는 착각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6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28 [145]



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댈 지음,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0

 

학창 시절 축구를 하다가 우연히 내가 헤딩을 연속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에는 공을 머리에 얹고 걸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로 빗자루처럼 어느 정도 길쭉한 건 뭐든 머리에 세울 수 있다는 것도, 머리뿐만 아니라 발끝에도 어깨에도 심지어 턱에도 세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뭐든 중심을 잡아서 세우거나 방석을 돌리다가 던지고 받는 등,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친구들은 잡기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도 잡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노릇들을 이름조차 없는 고독한 예술이라 우기곤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샐던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으며 내 고독한 예술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내 잡기들이 사회에서 높이 쳐주는 능력이라면, 시장가치가 높은 능력이라면 나는 조금 다르게 살아왔을까? 저자는 내가 가진 재능이 우연히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도덕적 문제도 아닌, 단지 행운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헤딩이나 중심잡기를 연습하지 않았다. 그건 분명 내가 가지고 태어난 무엇이다. 그래서 능력이나 지능, 교육 여건은 모두 자의적인 우연이라는 저자의 말에 무척 공감한다. 

 

저자는 묻는다. 재능의 소유나 결여를 순전히 각자의 몫으로 봐도 될까? 재능 덕분에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노력했지만 시장이 반기는 재능은 없는 탓에 뒤떨어져 버린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능력주의가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해도, 그리하여 각자의 직업과 보수가 노력과 재능에 완전히 비례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이 책의 원 제목은 <Tyranny of Merit>이다. 책의 내용을 따라 해석하면 ‘능력주의의 폭정’ 정도가 되겠다. 저자는 책의 초반에 기독교의 은총론과 섭리론, 종교개혁에서 현대에 이르는 이야기를 에둘러 능력주의의 기원으로부터 주류의 생각으로 강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전개한다. 사회적 위치가 재능과 노력을 반영하도록 하자는 능력주의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마이클 샐던은 능력주의가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고 꼬집어 말하고 긴 지면을 통해 이를 부연한다. 

 

직업과 기회가 능력에 따라 배분되더라도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는다. 불평등 구조를 능력에 따라 재구축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재구축은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가졌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격차를 더 벌려 놓는다. 저자의 인용에 따르면 오늘날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미국인이 하위 50퍼센트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소득 상위 1퍼센트 출신의 학생이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노력과 재능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인의 70퍼센트는 ‘가난한 사람이 자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저자는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이동성은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고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한다고 말한다. 

 

마이클 센델은 불평등의 토대를 더욱 다지는 능력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의 존엄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에 의해 계량되는 경제적 기여의 가치는 사회적 기여도, 실제 가치와 다르다. 생산자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상실하고 엘리트주위가 주는 굴욕을 겪는 노동자의 분노와 상처를 인식하고 정치를 통해 그들의 불만을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 분배적 정의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의미와 존엄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선호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고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나아가자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 말마따나 재능, 능력은 집단에 주어진 것이고 집단이 열매를 함께 누려야 한다. 교회 생각이 났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 선물이라고 고백하는 교회가 오히려 개인의 재능과 부를 축복의 바로미터로 삼아 믿음의 빈부격차, 믿음의 진입장벽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싶어 씁쓸하다.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

 


 
   
 

 
Copyright(c) 2012 http://bible25.bible25.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