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바이어던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저, 진석용 역, 나남, 2008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인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개인의 안전과 사회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계약을 맺고 국가를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초로 사회계약론의 관점에서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려고 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기적 존재인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 권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의회파에게는 ‘절대왕정을 옹호하는 논리’라고 배척당했고, 왕권신수설을 당연시하던 왕당파에게는 ‘군주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억지’라고 공격당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게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했기 때문에 홉스는 ‘염치없는 유물론자’라고 비난당했다.
홉스는 젊은 시절 <신기관>(Novum Organum)의 저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개인 비서로 일했고, 40~50대에는 학자로 정치적 망명자로 유럽을 주유(周遊)하며 갈릴레오와 같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과 교우한 덕분에 유클리드 기하학과 데카르트의 수학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토대로 ‘과학적 방법론’을 정립하고 자연, 인간, 사회에 관한 종합적 지식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그 결과인 <리바이어던>은 저술 목적에 부합되게 단순한 정치 사상서에 머물지 않고, 인식론을 논하는 철학서, 국가론을 전개하는 이론서, 교황의 주장을 논박하는 신학서, 현실 사회문제를 비판·고찰하는 지침서로서 그 구성 또한 자기 완결적이다.
홉스는 국가의 ‘재료’가 될 인간의 본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자기 밖의 세계를 파악하고 현실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정념’(情念, passion)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정부가 존재하기 전의 상태, 즉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살인까지도 저지를 수 있고, 그 점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동물의 세계는 먹이사슬의 서열에 따라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이지만, 인간의 세계는 강자와 약자가 있기는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면 약자도 강자를 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등하다.
홉스에 따르면,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죽음의 공포가 인간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인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추구하게 만든다. 그는 자기보존의 권리인 자연권을 인간의 이기적 정염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인간의 권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규범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기초해서 제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인간은 모두가 똑같이 만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타인에 대해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 간의 권리 포기는 사회계약으로 완성되는데, 모든 구성원은 신의계약(信義契約)을 맺고 ‘통치자’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해야 한다. 권리를 양도받은 통치자는 모두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구성원 각자는 통치자의 결정을 자신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데. 이기적 정념의 작동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신의계약을 위반하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 국가가 바로 이러한 처벌을 가하는 권력인데, 구성원들의 계약에 의해서 창조된 일종의 법인격(法人格)이다. 국가는 평화롭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찰력, 입법권, 사법권, 관리임명권, 교육하고 검열할 권한도 행사하는데, 그 권력은 절대적이다.
권력의 절대성을 강조한 홉스조차도 계약에 의해서 양도될 수 없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바로 ‘자기보존’이라는 사회계약의 목적, 즉 생명의 권리이다. 주권을 행사하는 통치자가 이 권리를 침해한다면, 사회계약은 어떻게 되나? 홉스는 저항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주권자가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 지속되는 동안에만, 주권자에 대한 백성의 복종이 지속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리라.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홉스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생업 전선에서 싸우고 있고,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이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어 사생결단할 참이다. 진영 논리가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으며 편 가르기와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노동자들의 생명권이 존중되고 보호받지 못한다면, 누가 선거에서 이겨 대통령이 되더라도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홉스까지 인용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박윤덕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